숙성부터 수출까지…오크통 없었다면 오늘의 와인도 없다 [명욱의 호모마시자쿠스]

입력 2021-12-09 17:38   수정 2022-01-13 15:56

서유럽의 대표적 술인 와인, 위스키, 코냑 등은 모두 오크통이라는 용기에서 숙성한다. 주로 참나무로 만드는 오크통은 나무의 맛과 색이 술 속에 들어가 다양한 향미를 더한다. 초콜릿, 아몬드, 바닐라, 버터 향 등이다. 여기에 진한 색과 참나무 특유의 타닌 함량은 와인의 떫은맛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크통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초기 오크통엔 맥주를 보관했다. 이전까지 와인은 암포라라는 항아리에 저장했다. 갈리아 원정에 나선 로마의 카이사르가 오크통에 맥주를 담아 숙성시키는 게르만인을 발견했다. 이후 암포라보다 나무로 된 오크통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크통에 와인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오크통은 와인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판매와 수출에 혁신을 가져왔다. 일단 오크통은 암포라보다 가볍다. 예로부터 전쟁이나 대규모 이동 시 늘 술을 가져갔다. 사기 진작의 이유도 있었고, 적들이 우물에 독을 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흙으로 만든 암포라는 무거워 늘 애를 먹었다. 잘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크통은 내구성이 좋고 가벼웠다. 굴려서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게다가 술맛까지 좋아졌다. 와인 수출도 용이했다. 중세 초기 정확한 저울이 없어 와인 용량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와인을 담은 오크통이 기준이 됐다. ‘통’ 소리가 나면 꽉 찼다고 인식했다. 여기서 유래한 무게 단위가 ‘톤(ton)’이다.

단순히 참나무를 조립했다고 해서 오크통이 아니다. 토스팅이란 굽기 과정을 거친다. 굽는 이유는 나무 성분이 분해돼 화합물 생성을 돕기 때문이다. 나무가 상하는 것은 물론 벌레도 막을 수 있다. 가볍게 토스팅하면 과실 향이 풍부해지고 떫은맛이 약간 나는 와인이 된다. 좀 더 토스팅하면 바닐라 향과 커피 향이, 더 진행하면 구운 빵 향이 난다.

오크통은 수분이 쉽게 새어나가지 않는다. 일단 액체에 적시면 나무 부피가 커져 빈틈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오크통을 둘러싼 쇠 테두리를 조정하면 통을 더 조일 수 있다. 새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증발은 막을 수 없다. 증발하는 양은 나무에 따라 다르다. 물관이 제대로 막혀 있는 참나무는 증발을 막는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화이트 오크다. 한국산 참나무, 미국산 붉은 참나무는 물관이 막혀 있지 않아 오크통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근대를 거쳐 절대왕정 시기에도 와인 교역은 계속됐다. 상당수의 화물선이 와인 화물선이었다. 당시 와인은 유리병이 아니라 오크통에 넣어 수출했다.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을 찾은 청교도인 102명이 탄 메이플라워호도 와인 화물선이었다. 세계사에 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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