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토(네이버·카카오·토스)는 없었다. 9일 금융위원회가 서울 역삼동 디캠프에서 개최한 핀테크 업계와의 간담회 얘기다. 고승범 위원장이 취임한 후 업계의 고충을 듣고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대표 업체들과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지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3사는 빠졌다. 트래블월렛, 핀크, 핀타, 해빗팩토리, 에이셀테크놀로지, 스몰티켓, 세틀뱅크, 아톤 등 중소형 핀테크사가 자리를 대신했다.
고 위원장은 이날 “빅테크와 중소형 핀테크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규제를 업계별 차등 적용하겠다는 뜻을 직접 내비쳤다. 대형 플랫폼의 데이터 독점 등에 적극 대응하되, 영세 핀테크에 대한 규제 장벽은 낮추겠다는 의미다. 잇단 ‘빅테크 때리기’와 금융소비자보호법 강화로 모바일 금융 플랫폼의 입지가 축소돼 온 가운데 핀테크 업계를 둘러싼 ‘걸림돌’이 일부 사라질지 관심이 쏠린다.
고 위원장은 간담회를 마친 뒤 ‘핀테크가 빅테크부터 스타트업까지 규모가 다양하니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말에 “일리있는 지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규제 측면에서 (빅테크와 핀테크에 대해) 다른 것은 다르게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일명 ‘네·카·토’로 불리는 빅테크와 중소형 핀테크에 대해 규제를 ‘투트랙’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빅테크에 대해서는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고 위원장은 행사 후 “대형 플랫폼 등장에 따른 데이터 독점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도 적극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또 행사에 참석한 회사들을 상대로 “빅테크 업체들이 이미 많은 개인·신용 정보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할 경우 기존 금융사와 동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을 맡은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플랫폼 사업모델을 활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시장 지배력이 낮은 플랫폼형 핀테크에 같은 규율을 적용할 것은 아니다”며 “핀테크 기업이 금융회사나 빅테크 기업과의 무한경쟁으로 질적 성장 기회를 상실하지 않도록 공정한 협업과 경쟁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핀테크 업계는 금소법상 금융상품 ‘중개’ 행위로 해석되는 상품 비교·추천 서비스를 핀테크 업체에도 허가해달라고 당국에 요구해 왔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현행 기준대로면 보험대리업(GA) 라이선스가 없는 인슈어테크(보험 핀테크)는 보험상품 비교추천서비스를 제공할 수조차 없다”며 “상당수의 핀테크가 금융 관련 비즈니스를 할 길이 아예 막힌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 위원장은 “금융서비스에 대해 소비자보호 원칙은 지켜나가되, 맞춤형 비교·추천 등 혁신적 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 진화에 맞게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답했다.
마이데이터 사업 관련 제도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내년에 출범하는 마이데이터가 맞춤형 ‘데이터 저장·관리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공공데이터의 정보 제공 범위도 확대, 핀테크들이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금융사 부수업무 확대 검토 △망 분리 및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 등 규제 개편 △핀테크 사업화를 위한 D-테스트베드 사업 운영 확대 △지급 결제 분야 제도적 기반 마련 등을 약속했다. 고 위원장은 간담회 후 취재진과 만나 “망분리 규제가 조금 과도하게 적용돼 핀테크에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이 빅테크-핀테크에 대한 ‘차등 규제’를 공식화하면서 금융당국의 정책도 이원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 위원장은 오는 15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금융플랫폼 혁신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열고 빅테크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박진우/정소람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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