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조정위원회는 첨예한 갈등이 있을 때 여야가 ‘3 대 3’ 동수로 구성해 최장 90일간 숙려하는 국회선진화 제도의 하나지만 입법 폭주 통로로 변질된 지 오래다. 3분의 2(6명 중 4명 이상)가 찬성해야 상임위 전체회의 상정이 가능한 규정이 있지만 ‘위성정당’ 동원 등의 편법이 비일비재해서다. 여당이 두 손을 들고만 ‘언론재갈법’이 야당 몫으로 안건조정위에 참여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활약’으로 통과된 게 대표 사례다.
여당의 최우선 입법 목표는 노동이사제 도입이다. 앞서 이재명 대선후보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의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고, 한국노총을 직접 방문해 도입을 약속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서라도 정기국회 내에 통과시킬 것을 여당에도 지시해 소위 ‘이재명 하명법’으로 불린다. 이외에도 여당은 사회적경제법, 개발이익환수법 등의 단독처리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하나같이 큰 파장을 부르는 법안들인 반면 논의는 설익은 상태다. 노동이사제의 경우 기획재정위 논의가 지난해 11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정도다.
그런데도 여당은 밀어붙이기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 후보가 “일방처리 또는 책임처리 하는 게 맞다”는 기막힌 주문을 내자, 깜짝 놀란 당 지도부는 “책임지고 단독처리하겠다”고 했다. 위성정당을 양산한 공직선거법, 정권친위대를 탄생시킨 공수처법, 부동산 지옥을 만든 ‘임대차 3법’ 폭주 때를 연상시키는 행보다. 노동이사제 개발이익환수제 사회적경제 등은 논란이 첨예한 법률인 만큼 국민적 동의가 필수다.
서울·부산시장을 뽑은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핵심 사유가 바로 입법폭주였고, 당 지도부도 수차례 사과했다. 이재명 후보 역시 큰절로 사죄하며 변화를 약속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은 편가르기로 지지자를 결집하는 구태 그대로다. 말로는 통합과 민생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분열과 독선으로 치닫는 수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신물나도록 봐왔기 때문이다. ‘정당한 의회 절차’ 운운하며 편법 날치기를 재연하는 것은 민심의 쓰나미를 자초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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