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자 내느니 차라리 집세가 낫다"…강남은 이미 '월세 시대'

입력 2021-12-10 07:12   수정 2021-12-10 10:48


# 집주인의 요구로 전셋집에서 나와야하는 직장인 정모씨(39)는 전세 대신 월세를 구하고 있다. 기존에 살고 있던 지역의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증액되는 전세금이 많이 늘어난 데다, 전세 대출 금리도 기존 연 2% 중반대에서 3%대로 뛰면서 부담해야 할 이자가 늘어서다. 정씨는 "전세 대출을 늘려 은행에 내야 할 이자와 반전세로 내는 월세를 비교해보니 월세가 조건이 나은 것 같아 월세를 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 '월세(반전세·반월세 포함)' 계약이 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말 전세 계약 1회 갱신 의무화, 전셋값 인상률 5% 제한 등 '임대차 3법'을 시행한 뒤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다. 종합부동산세 등 아파트 보유세가 치솟으면서 집주인이 세금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다. 시장에선 "전세는 없어지고 월세가 늘어나는 이런 흐름이 앞으로 서울 전역으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남4구 비롯 노도강도 '월세' 거래 줄이어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래미안대치팰리스'에서는 이달 들어 총 10건의 임대차 계약이 맺어졌다. 이 중에 절반은 월세를 낀 계약이다. 이 단지 전용 84㎡는 지난 3일 보증금 7억5000만원에 월세 330만원의 보증부월세(반전세) 계약을 맺었다. 전용 94㎡는 보증금 8억원에 월세 334만원의 반전세 계약과, 아예 보증금을 크게 낮춘 2억원에 월세 491만원짜리 월세 계약도 체결됐다.

대치동 사거리 인근에 있는 '은마' 전용 84㎡도 이달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75만원짜리 반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 면적대는 지난달에도 5억원에 120만원, 4억원에 130만원, 4억원에 170만원 등 여러 반전세 계약이 맺어졌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도 이달 보증금 10억8000만원에 월세 130만원짜리 반전세가,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도 보증금 6억원에 90만원 등 반전세는 물론 1억500만원에 147만원, 1억원에 165만원 등 월세 계약이 잇달아 맺어졌다.

이런 흐름은 비단 강남 4구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남서울힐스테이트' 전용 84㎡는 지난달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50만원짜리 반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 단지 전용 59㎡도 보증금 2억원에 50만원, 전용 113㎡에서도 3억원에 150만원 등 반전세로 세입자를 찾았다.

강북구 번동에 있는 '수유역두산위브'에서도 지난 9월 전용 84㎡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40만원짜리 월세 계약이 맺어졌고,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주공6단지'는 이달 들어 총 4건의 임대차 계약이 있었는데 전용 58㎡는 1억원에 49만원, 전용 37㎡는 1000만원에 60만원 절반은 반전세와 월세로 세입자가 들어왔다.
전세 물량 줄고 세 부담 늘자 월세 거래 많아져
반전세 등 월세 거래가 늘어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난해 정부가 시행한 ‘임대차 3법’이 꼽힌다. 정부는 주택 임대차법을 개정하면서 전·월세 계약의 1회 갱신을 의무화하고, 갱신 계약 임대료 인상률은 5% 이내로 묶었다. 법 시행 이후 전세 매물은 급감했다. 전세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세입자들은 기존에 살던 집에서 2년간 추가로 더 살 수 있고,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로 세입자를 들이게 되면 최대 4년간 시세대로 전셋값을 받을 수 없게 돼서다.

대치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4년 동안 전셋값을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려운데 전세를 놓으려는 수요가 있겠느냐"며 "물론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들은 전세를 놓겠지만 많은 집주인이 최근에는 월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가 증가한 점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은퇴자들이 여유 현금이 부족해지자 다달이 월세를 받아 세금을 충당하려 한단 설명이다. 반포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집값이 많이 오르자 집주인들이 세금고지서를 받아보고 반전세 등을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전세의 월세화'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내년 7월 임대차법 시행 2년 차가 되면 전셋값 상승이 불가피하다.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는 상황에서 전셋값이 더 치솟게 되면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강동구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지금도 세입자들이 반전세를 찾는 경우가 있다"며 "금리가 많이 올라 전셋값이 오른 만큼 대출을 받나 반전세로 돌려 이자를 내나 월 부담하는 금액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주인들도 전세를 안 놓으려고 하고, 세입자들도 전셋값이 비싸 못 들어온다면 앞으론 월세가 더 많아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점점 늘어나는 월세 비율
월세 비율은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날까지 전체 임대차 계약 가운데 조금이라도 월세가 낀 계약은 36.51%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32.32%였던 월세율은 2019년 28.08%까지 내렸다가 2020년 31.08%로 다시 30%대로 진입했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월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금천구로 전체 임대차 계약 3566건 가운데 2065건이 월세로 57.91%를 기록했다. △중구 44.22% △종로구 43.16% △강동구 41.79% △강남구 40.51% 등 순이었다. 건수로 살펴보면 강남구가 5496건으로 가장 많았고 △송파구 5412건 △강동구 5085건 △강서구 4125건 △노원구 3908건 등이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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