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주인의 요구로 전셋집에서 나와야하는 직장인 정모씨(39)는 전세 대신 월세를 구하고 있다. 기존에 살고 있던 지역의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증액되는 전세금이 많이 늘어난 데다, 전세 대출 금리도 기존 연 2% 중반대에서 3%대로 뛰면서 부담해야 할 이자가 늘어서다. 정씨는 "전세 대출을 늘려 은행에 내야 할 이자와 반전세로 내는 월세를 비교해보니 월세가 조건이 나은 것 같아 월세를 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 '월세(반전세·반월세 포함)' 계약이 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7월 말 전세 계약 1회 갱신 의무화, 전셋값 인상률 5% 제한 등 '임대차 3법'을 시행한 뒤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다. 종합부동산세 등 아파트 보유세가 치솟으면서 집주인이 세금 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도 많다. 시장에선 "전세는 없어지고 월세가 늘어나는 이런 흐름이 앞으로 서울 전역으로 확산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치동 사거리 인근에 있는 '은마' 전용 84㎡도 이달 보증금 3억원에 월세 175만원짜리 반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 면적대는 지난달에도 5억원에 120만원, 4억원에 130만원, 4억원에 170만원 등 여러 반전세 계약이 맺어졌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도 이달 보증금 10억8000만원에 월세 130만원짜리 반전세가, 강동구 상일동에 있는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도 보증금 6억원에 90만원 등 반전세는 물론 1억500만원에 147만원, 1억원에 165만원 등 월세 계약이 잇달아 맺어졌다.
이런 흐름은 비단 강남 4구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남서울힐스테이트' 전용 84㎡는 지난달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50만원짜리 반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 단지 전용 59㎡도 보증금 2억원에 50만원, 전용 113㎡에서도 3억원에 150만원 등 반전세로 세입자를 찾았다.
강북구 번동에 있는 '수유역두산위브'에서도 지난 9월 전용 84㎡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40만원짜리 월세 계약이 맺어졌고,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주공6단지'는 이달 들어 총 4건의 임대차 계약이 있었는데 전용 58㎡는 1억원에 49만원, 전용 37㎡는 1000만원에 60만원 절반은 반전세와 월세로 세입자가 들어왔다.
대치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4년 동안 전셋값을 마음대로 조정하기 어려운데 전세를 놓으려는 수요가 있겠느냐"며 "물론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들은 전세를 놓겠지만 많은 집주인이 최근에는 월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가 증가한 점도 전세의 월세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부 은퇴자들이 여유 현금이 부족해지자 다달이 월세를 받아 세금을 충당하려 한단 설명이다. 반포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집값이 많이 오르자 집주인들이 세금고지서를 받아보고 반전세 등을 택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전세의 월세화'는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내년 7월 임대차법 시행 2년 차가 되면 전셋값 상승이 불가피하다. 금융당국이 최근 가계대출을 조이고 있는 상황에서 전셋값이 더 치솟게 되면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찾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강동구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지금도 세입자들이 반전세를 찾는 경우가 있다"며 "금리가 많이 올라 전셋값이 오른 만큼 대출을 받나 반전세로 돌려 이자를 내나 월 부담하는 금액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주인들도 전세를 안 놓으려고 하고, 세입자들도 전셋값이 비싸 못 들어온다면 앞으론 월세가 더 많아지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올해 들어 서울에서 월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금천구로 전체 임대차 계약 3566건 가운데 2065건이 월세로 57.91%를 기록했다. △중구 44.22% △종로구 43.16% △강동구 41.79% △강남구 40.51% 등 순이었다. 건수로 살펴보면 강남구가 5496건으로 가장 많았고 △송파구 5412건 △강동구 5085건 △강서구 4125건 △노원구 3908건 등이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