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000만원까지 적용된 전기차 구매보조금 100% 지급 상한이 내년에는 5500만원으로 500만원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기차 제조사들이 고심에 빠졌다.
본격적 전동화 전환으로 전기차 판매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보조금 축소에 적정 가격을 책정하기 어려워서다. 당장 소비자들도 똑같은 가격대의 전기차를 구입하더라도 보조금 축소에 따라 올해보다 수백만원의 비용을 더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9일 자료를 내고 "올해 신설된 보조금 100% 지급 상한액을 6000만원(전기차 기본가격 판매 기준)에서 5500만원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차량 제조사, 지방자치단체 등과 최종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보조금 50% 지급 구간인 6000만~9000만원 차량도 5500만~8500만원으로 변경된다. 또 8500만원 이상부터는 보조금 지급이 아예 제외된다. '고급 전기차' 기준이 올해 9000만원 이상에서 8500만원 이상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급하는 최대 보조금도 기존 8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낮아진다. 지자체 보조금도 이에 비례해 축소된다.
환경부는 이 같은 개정안을 지자체, 관계부처 등 유관기관 협의가 마무리되는 대로 내년 1월 초 확정할 계획이다.
이처럼 전기차 보조금 기준이 완화되면서 소비자들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현대차가 지난 4월 내놓은 아이오닉5의 고급 모델인 '롱레인지 프레스티지 AWD(5755만원)'의 경우 올해 정부(국고)와 지자체(서울시 기준) 보조금(1000만원)을 받으면 4755만원에 살 수 있었지만, 내년엔 보조금이 줄어 많게는 5300만원가량 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1000만원)을 지급받아 3980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었던 '아이오닉5 2WD 롱레인지(4980만원)' 모델은 국고 보조금(200만원)이 줄 경우 4180만원 정도로 뛸 것으로 보인다. 기아 'EV6 2WD 롱레인지' 구입 가격도 같은 원리로 올해 4020만원에서 4220만원으로 200만원가량 더 내야한다.
제네시스가 지난 10월 출시한 전기차 'GV60'의 기본 모델 가격은 5990만원으로 기존에는 100% 지급 상한에 지자체 보조금까지 더해 100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년에는 보조금이 절반으로 준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올해 국내에 출시한 전기차 'EQA'(5990만원) 역시 보조금 지급 상한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했지만 내년에는 보조금 규모가 절반 이상 줄어든다.
업체들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각각 내년 상반기에 전기차 ID.4와 Q4 e-트론을 보조금 100%를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인 5900만원대에 출시할 것으로 전망됐다.
제프 매너링 아우디코리아 사장은 최근 열린 서울모빌리티쇼에서 Q4 e-트론을 6000만원 이하부터 판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5500만원으로 보조금 기준이 바뀌면 가격을 더 내리거나 보조금 50%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자동차 업체 입장에선 전기차 가격을 내리면 수익성이 낮아지고, 가격을 유지할 경우엔 보조금이 절반으로 삭감돼 그만큼 판매량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기차는 배터리 소재 원가 상승세까지 지속되고 있어 판매가격 인하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라며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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