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산업지능] '스마트제조' 육성 전략 시급하다

입력 2021-12-12 17:06   수정 2021-12-13 00:18

“제조가 돌아왔다!” 최근 미국 산업의 가장 큰 화두는 제조의 귀환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선진국에서 필요한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하자는 제조 자국화가 핵심 정책 아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20년간 세계 경제 질서는 생산은 아시아, 금융과 기타 서비스는 서방국이 주도하는 협력체계가 구축됐다. 이런 세계화의 과실로 한국 제조산업은 지난 20년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다시 ‘제조 부흥’이란 산업 카드를 꺼내 들었을 때 대한민국의 제조 산업이 어떻게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 지금은 기존 제조 산업을 지능화하고 스마트하게 발전시키는 ‘스마트제조 산업’을 육성하는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스마트제조 산업이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제조 자동화와 지능화를 구축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스마트제조 산업의 핵심은 제조 설비 운영을 관장하는 제조 IT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독일 지멘스, 미국 PTC, 프랑스 다소와 같은 기업이 대표적인 제조 IT 소프트웨어 공급 기업이다.

국내 제조 IT 소프트웨어 산업의 현실은 어떨까? 대한민국은 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첨단가전, 조선과 같은 산업에 글로벌 1등 제조 기업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조 IT 및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

명확한 원인과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여러 자료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정부 산업기준 정보에 따르면 국내 공장 운영 관리 시스템(MES) 소프트웨어 공급 기업 수는 600여 개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10명 이하 영세 업체로 상당수 기업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스마트공장 확산 사업 보조금에 의지하고 있다.

보조금을 통해 연명하는 기업이 넘쳐나면서 이로 인해 저가 경쟁이 난무한 시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국내 제조 IT 기업의 건당 솔루션 구축 금액은 1억6000만원 정도다. 해외 MES 솔루션 구축 비용이 수십억원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국내 솔루션은 저가 시장에만 머무르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대부분 기업은 공장 전산 시스템 구축을 하청받아 소요된 인건비를 수임료로 벌어들이는 시스템통합(SI)성 사업으로 생존하고 있다. 물론 불특정 다수에게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일반 소프트웨어 사업과 달리 고객의 다양한 요구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제조 IT 소프트웨어 특성상 어느 정도의 SI성 개발도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조 IT 시스템의 기술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제조 IT 분야 해외 강소 기업들은 제조 산업별로 범용 솔루션을 갖추고 모듈화를 통해 고객별로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다양한 고객의 요구에도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이들의 핵심 기술이자 경쟁력이다.

국내 제조 전문 IT 소프트웨어 기업의 또 다른 문제는 융합 기술 부재다. 제조 IT 시스템은 여타 소프트웨어 개발과 달리 제조 자체의 도메인 기술과 IT 시스템 역량을 함께 요구한다. 제조 전문 지식 없이 대학에서 전산이나 컴퓨터 공학만 전공해서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제조 IT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즉 제조 역량과 IT 시스템 역량을 함께 지닌 조직을 갖춰야 경쟁력 있는 제조 IT 시스템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

다행히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존재한다. 우선 저가 경쟁을 부추기는 제조 IT 소프트웨어 보급사업을 고도화된 지원 사업 형태로 바꿔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한 스마트공장 확산 사업으로 국내 많은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저가 경쟁으로 인해 실력 있는 제조 IT 소프트웨어 기업마저 제값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은 개선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최근 대학들도 학문 간 벽을 허무는 융합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의 의지만 있다면 제조 IT 교육 프로그램을 정책적으로 개설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외 환경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선진국들의 제조 산업 부흥 정책으로 향후 몇 년간은 미국과 유럽 등 곳곳에 공장이 들어설 것이다. 이미 제조 강국 이미지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제조 IT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한다면 전 세계의 새로운 제조 부흥 속에서 새로운 산업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장영재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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