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처드 교수는 전날 한국의 수험생 소송인단에 ‘한국 수능의 집단유전학 문항(A problem in population genetics from the Korean Suneung)’이라는 제목의 의견서를 보내왔다. 여기에는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오류가 명백하다. 문항 자체가 모순”이라는 의견이 담겼다.
수험생 소송인단은 지난 2일 평가원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문제의 오류를 입증하기 위해 프리처드 교수 연구실에 이메일을 보내 관련 내용을 문의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오는 17일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세계적 의과학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교수도 프리처드 교수 의견에 동의했다. 그는 트위터에 “내가 대학교 2학년 때나 봤을 법한 문제를 한국에선 고등학생들이 답하고 있다. 알고 보니 그 문제는 푸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썼다.
프리처드 교수는 컴퓨터 알고리즘 등을 동원해 유전 변이와 진화를 연구해온 집단유전학 분야의 권위자다. 크리스타키스 교수는 2009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올랐다.
이처럼 올해 한국의 수능시험이 미국 생명과학계 일각에서 회자된 데에는 소송에 참여한 학생들의 자발적 노력이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열아홉~스무 살인 이들은 국내 과학교사·강사·교수를 수소문해 의견을 구한 것은 물론이고, 논란이 된 문항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 프리처드 교수 측에 보냈다. 소송 대리인인 김정선 변호사는 “학생들이 협력해 세계 각국의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어 얻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중 한 의견이 “지문의 Ⅰ과 Ⅱ집단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주어진 조건의 활용 여부에 따라 해답을 구하는 데 심각한 오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원 정답 처리가 합당하다”는 것이다. 유전학회는 종합의견으로 “기존 정답 유지 처리와 전원 정답 처리 중 하나를 제시하지 않고,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의견 없음)’하는 것을 최종 의견으로 제시한다”고 답했다.
문항 풀이 의견에는 “결과가 모순되기 때문에 응시자는 풀이 전체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유전학회는 학생들의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에서도 ‘문항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평가원이 자문을 구한 나머지 두 학회는 한국과학교육학회와 한국생물교육학회다. 이들은 “기존 정답이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평가원은 홈페이지에 접수된 2022학년도 수능 문제·정답 이의신청을 심사한 결과 76개 문제에 모두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지난달 29일 판단을 내렸다. 이후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해당 문항에 대해 자문한 학회 이름과 이들의 답변 내용을 밝히지 않아 관련 수험생의 거센 반발을 샀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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