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사들이 여행, 쇼핑, 교육,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국내 전통 금융사들도 비금융 사업으로 다각화해야만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조재박 삼정KPMG 디지털본부장은 지난 10일 한경·삼정KPMG 디지털금융 포럼에서 ‘빅테크 금융 진출과 시사점’에 대한 주제 발표를 맡아 이같이 조언했다. 조 본부장은 “금융업에 업종 간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며 “소비자도 더 이상 전통 금융사의 ‘충성 고객’으로 머무르지 않고 금융-비금융 연계 서비스를 취향에 따라 선택한다”고 전했다.
‘전통’ 금융사들은 수년간의 정부 규제 완화가 빅테크, 핀테크의 금융업 진출을 가속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다. 최근 KB, 신한, 하나, 우리 등 국내 4대 민간 금융지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5.5배 수준이다. 이들보다 ‘덩치’가 작은 카카오뱅크의 PER은 200배가 넘는다.
그러나 ‘규제 차익’만으론 이런 격차를 설명하기 힘들다는 게 조 본부장의 설명이다. 조 본부장은 빅테크 성공 요인으로 디지털 및 데이터 역량의 내재화와 사용자가 사용자를 부르는 네트워크 효과를 꼽았다. 바꿔 말해 기존 금융사도 이런 요소를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미래가치를 담보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통 금융사인 싱가포르 DBS는 동남아시아 디지털 뱅킹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DBS는 ‘리브 모어(live more), 뱅크 레스(bank less)’를 모토로 삼고 소비자가 은행에 머무르는 ‘뱅킹 시간’을 줄이는 걸 핵심성과지표(KPI)로 삼았다. 그 결과 동남아 차량 호출 플랫폼 고젝과 ‘인도네시아의 아마존’으로 각광받는 부칼라팍 등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DBS의 시가총액은 국내 대형 금융지주의 3배가량인 70조원에 달한다.
미국 마스터카드는 신용카드업이 몰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간 주가가 3배 올랐다. 디지털 신원확인, 데이터 및 암호화폐 분석 등 시장 변화에 맞는 새로운 스타트업을 지속적으로 인수한 결과다. 기존 결제 외 데이터 컨설팅 등 기타 분야 수익 비중도 지난해 20%에 달했다. 조 본부장은 “정보기술(IT)이 ‘비용’이던 시대가 저물고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핵심 역량으로 떠올랐다”며 “고객 경험 차별화와 조직의 민첩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도 금융사의 변신과 빅테크와의 협업, 금융당국에 대한 당부까지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빅테크와 금융사는 국내에선 경쟁할 수밖에 없지만,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선 적극적으로 협력해봄 직하다”고 제안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온라인 플랫폼을 규제하는 각종 법안이 통과된다면 혁신의 과실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김철기 신한은행 디지털혁신단장은 “은카금보(은행, 카드, 금융투자, 보험사) 등 기존 금융사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기반으로 ‘플러스알파’를 가미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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