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선 앞두고 '코로나 손실보상' 폭탄돌리는 與野

입력 2021-12-12 17:31   수정 2021-12-13 00:20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신음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여야 대선 후보들이 ‘희망고문’을 하고 있네요.”

여야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소상공인 손실보상 공약을 두고 기획재정부 출신의 한 전직 고위관료는 이같이 혹평했다. 후보들이 현행 예산 수립과 집행 체제에선 도저히 불가능한 정책을 약속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소상공인 손실보상 논의는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7일 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집권하면 100조원대 투입을 검토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시작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곧바로 “대환영”이라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추경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대응하면서 불이 붙었다. 윤 후보도 10일 “국민의힘이 (추경 편성에) 반발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집권 여당 후보가 행정부를 설득해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다음 여야 정치인들이 논의하자”고 했다.

발언 내용만 보면 일견 여야 양당이 대규모 추경 편성안에 합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은 대선을 앞둔 정치적 수사(修辭)일 뿐 실제 추경 집행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가능하지 않은 일을 앞다퉈 약속하면서 책임만 상대방에게 떠넘긴다는 지적이다.

우선 정부가 추경 편성에 동의하지 않는다. 헌법(54조)은 예산 편성권은 정부, 예산안 심의권은 국회에 부여했다. 나라 살림을 협의해 결정하라는 취지다. 청와대와 기재부가 난색을 보이고 있다. 12월 임시국회 때 추경 편성은 재원 마련도 어렵다. 남은 재원이 없으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시장이 국채를 인수할 여력이 없다. 금융회사들이 올해 예정된 국채 매입 한도를 채우고 회계장부를 마감했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여야가 추경 논의를 시작해 2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대선 투표일(3월 9일)을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 세부 내용에서 여야 간 합의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전문가들은 “추경 편성보다 기존에 편성한 내년 예산을 효율적으로 시급히 집행하는 게 우선”(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이라고 지적한다.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소상공인 지원 예산만 총 10조1000억원이다. 일자리 예산(31조3000억원), 양극화 대응 복지예산(41조3000억원) 등의 항목에서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끌어 쓸 수 있는 돈이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국회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 국민은 헛된 공약(空約)보다 민생에 도움이 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대선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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