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나와야 할 대선 메시지인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방안’과 ‘비서실 개편 방안’도 미진하다. 이 후보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 말고 밝힌 것이 없다. 윤 후보는 경선 토론에서 ‘대통령의 초법적 지위를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 돌려놓겠다’며 청와대 사정 기능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 해결에는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지적을 주목한다. 두 학자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권위주의화되는 모습을 보며 ‘관용과 절제의 민주적 규범’이 무너지면서 ‘견제와 균형’ 시스템도 무너졌다고 했다. 트럼프는 사법부에 자신의 사람 임명을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도 대법원, 검찰, 감사원,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자기편 진영 인사들로 채워 정치적 반대를 제압하는 ‘무기로 활용’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 권한인 비상조치권, 개헌발의권, 행정입법권, 사면권을 넘어 진정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드는 권력은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 임명권,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권이다. 대통령이 사법부에 자신의 진영 인물 심기를 스스로 자제해야 진영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고 제왕적 대통령이 사라진다.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이 국정을 장악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은 청와대 문고리 권력에서 시작됐다.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문재인 대통령은 비서실 회의를 “지시사항의 전달이 아니라 논의해 결정하는 회의체가 되길 바란다”며 시작했다. 하지만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을 남기며 실패했다. 청와대가 국정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는 명분에 밀려 대통령비서실이 내각에 지시하고 국정을 끌어가는 과거 ‘비서실 정부’를 재현했다. 매주 월요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통령이 읽어 내린 ‘모두발언’은 국정 가이드라인이 돼 화요일의 국무회의를 압도했다. 결국 국무회의는 형해화됐다.
‘정부조직법’에 근거한 대통령비서실이 헌법기관인 국무회의를 압도하는 역전 현상이 지속됐다. 하지만 헌법은 대통령비서실이 아니라 국무회의가 국정의 중심 심의기관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헌법 88조는 “국무회의는 정부 권한에 속하는 중요한 정책을 심의한다”로 규정한다. 이어 89조에는 국무회의 심의사항으로 ‘1. 국정의 기본 계획과 정부의 일반 정책, 2. 중요한 대외정책’ 등을 열거하며 모든 국정에 대한 심의기구로 국무회의를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무회의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이 국정을 논의하는 사진을 본 적이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기 하는 모습,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읽어 내리는 메시지를 메모하는 수준의 국무회의를 봤을 뿐 국정 현안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심의하는 모습은 없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헌법을 경시한 탓이다.
진정 국정을 책임지는 집단은 내각이고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위한 스태프로 존재해야 한다. 대통령과 장관이 지시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협업 관계로 변화해야 ‘제왕적 대통령’이 사라질 수 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제와 어울리는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헌법이 총리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을 극복하는 방안은 멀리 있지 않다. 대통령비서실의 민정수석실과 별도 조직 정책실을 폐지하고 내각을 국정 운영 파트너로 해야 청와대만 쳐다보는 관료문화를 고칠 수 있다. 국무회의를 국정 심의기관으로 재정립하는 일은 그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