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책임 강화하는 글로벌 물결…실사구시 대응만이 살길

입력 2021-12-14 17:32   수정 2021-12-15 14:26



최근 국제사회에서 ESG,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과 같이 기업경영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노동 환경 등과 관련한 기업의 사회적 책무로서 인권실사 요구 등이 거세지고 있다. ESG 경영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환경과 사회 등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간 기업이 이러한 책임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실사의무를 자발적으로 하도록 맡겨 두었는데 이를 의무로 강화하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EU의 기업실사지침, 프랑스의 모회사의 자회사 등에 대한 실사의무법, 독일의 공급망실사법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고, 기업의 인권실사를 공급망 내 모든 협력회사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주요 선진 강국을 중심으로 ESG 경영에 대한 공개의무 강화와 연기금 등에 의한 ESG 책임투자도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강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국가인 국내산업은 ESG 관련 리스크에 대응할 여력이 녹록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국내의 글로벌 대기업은 ESG 경영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전체 산업구조에서 중소중견기업 비중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내산업구조가 과연 ESG 경영을 어떻게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물론 정부도 ESG 경영 지원 온라인 플랫폼 운영과 중소기업형 ESG 가이드라인 마련 등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국내 중소중견기업 ESG 경영 리스크는 생각보다 클 수 있다. 특히 국내 개별 중소중견기업이 독자적으로 ESG 경영전략을 도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ESG 경영 도입 유도도 중요하지만 국내 중소중견기업에서 ESG 경영전략을 어떻게 구축 확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ESG 경영 모범 중소중견기업 사례 발굴이나 ESG 관련 핵심기술과 ESG 경영전략을 수립할 전문인력 양성 등에 대한 정책 추진과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한편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개발도상국에서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노동, 환경, 인권 등의 부정적인 문제들에 대한 기업경영책임(Responsibility Business Conduct, RBC)의 내용을 정하고 이의 실천을 위한 활용의 장인 NCP(National Contact Point, 국내연락사무소)를 설치 운영하면서 가이드라인의 이행 내지 구제 수단을 구비한 국제규범이다. 이는 주로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CSR 등 기업의 사회적책임이나 이행원칙은 있으나 적절한 이행수단이 없는 UN의 기업인권 실사지침(UNGPs) 등과 차이가 있다. NCP에 이의를 제기하는 당사자로서 이의제기자는 다국적기업이 가이드라인을 위반하여 노동, 환경 등의 인권에 대한 침해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이를 대리하는 NGO도 포함)이고, 피제기자는 다국적기업이다. 다국적기업이 있는 국가에 NCP가 없을 경우 다국적기업의 본사가 있는 회원국 NCP에 제기할 수 있다. 현재 NCP를 설치한 국가는 OECD회원국을 포함한 49개이고 아시아에서는 우리나라와 일본에 설치되어 있다. 한국 NCP는 2011년 설치 이후 최근까지 30건 가까이 이의신청 사건이 접수되어 왔고, 주로 과거에는 노동인권 사건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개발도상국의 개발과 관련한 환경과 원주민 인권 관련 사건도 많아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국내 NCP에 미얀마 인권단체와 함께 미얀마 군부와 협력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대한 가이드라인 위반 진정이 제출되어 처리된 바 있다. NCP에 이의제기를 하면 제기 내용이 이의신청 당사자가 해당 쟁점과 이해관계가 있는지, 해당 쟁점이 중대하고 입증된 것인지 등을 기준으로 해당 사건을 종료시킬 것인지 아니면 2차 대화주선(조정)절차로 이행할 실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인지를 판단한다. 미얀마 사건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KNCP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NCP 운영의 특징은 이의신청된 사건의 처리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NCP에 이의신청된 사건에 대한 1차평가 통과의 의미는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지 피제기자가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간주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행 매커니즘이 이의신청 당사자 간의 대화주선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이고 대화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이행 수단으로서 NCP의 기능 활성화와 관련하여 넘어야 할 몇 가지 숙제들도 대두된다.

먼저,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특별한 법적구속력이 없는 비사법적 구제제도이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이 기업에게 상충되는 요건에 직면하도록 해서도 안되고 그러한 의도로 제정된 것도 아니다.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사법기관이나 준사법기관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따라서 2차평가절차인 추가 조사와 대화도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와 절차에 선의로 참여하겠다는 약속이 있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의제기사건 처리를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에 대해 기업 망신주기(naming shaming)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최대한 자발적 대화 참여 유도 방안 노력 활용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 신청 사건의 쟁점이 국내법적 소송절차(병행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에도 추가 조사 내지 주선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이 경우 소송중인 다국적기업이 소송에 불리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대화 참여에 소극적일 가능성이 있는데 병행절차에서 기업의 대화과정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지가 과제로 제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은 국제기구나 정부투자기관의 행위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ODA사업의 경우 상업성이 없거나 매우 약한 것이 사실이므로 가이드라인 적용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책금융기관 등에 대해 상업성 기준 사용에 대한 견해가 대립될 수도 있으므로 향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사실 과거 한국 NCP는 다국적기업 투자유치 증진 등 산업을 프로모션하기 위해 이의신청사건을 1차평가로 종료시킨 것이 많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NCP 동료평가 등을 통해 NCP 운영과 관련한 OECD 회원국 간 평가 압력이 거세지는 등으로 NCP 이의신청 사건처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국내 다국적기업들도 NCP의 구속력 없는 비사법적이고 자발적 참여에 기초한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대화에 전향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는 대화주선 과정에서 이의신청 당사자들 간 대화의 파트너십과 조정 성공률을 높이는 것에 있다.

이렇게 기업의 글로벌 경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기업의 경영책임 강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적극적이고 실사구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특히 ESG 경영은 우리나라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에 문제가 없도록 단계적 현실적 대비와 상당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 국내에 본사를 둔 글로벌 다국적기업도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준수와 관련한 구속력 없는 비사법적 절차인 NCP에 적극 참여하여 국제사회에서 글로벌기업의 명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할 필요도 있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좋은일터연구소가 발행하는 '한경 CHO Insight'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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