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8개 국책 및 민간 경제연구원의 원장과 전문가들은 14일 웹세미나 방식으로 열린 ‘2021년 한경 밀레니엄포럼 송년회’에서 내년에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시대가 도래해도 경기 반등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코로나 불확실성, 인플레이션 우려, 중국 경기 둔화 등이 겹치면서 내년 하반기엔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날 세미나에선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주현 산업연구원 원장,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원장, 김영민 LG경제연구원 원장,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 등이 발표자로 참여해 내년 국내외 경기를 전망하고 정책 방향 등을 모색했다.
홍 원장은 “내년 성장률은 3.0%로 전망되지만, 경기 회복세는 견고하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신 원장도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나오면서 경기 회복세가 더뎌질 우려가 크다”며 “자산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시장 안정이 훼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도 ‘코로나 터널’을 장기간 벗어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왔다. 배 전무는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등장하면서 경기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고 고령화로 가계 씀씀이도 갈수록 쪼그라들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원장도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비롯한 자체 방역 움직임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음식 숙박 스포츠관람 등 대면 서비스가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간소비와 함께 경제를 떠받치는 수출도 내년엔 주춤해질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주 원장은 “올해 25.6%로 추산되는 수출 증가율이 내년에는 3.4%로 하락할 것”이라며 “내년 반도체 수출이 최대 실적을 거두겠지만 선박·철강 수출은 올해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도 한국 경제에 불확실성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허 원장은 “새 정부 출범 첫해는 민간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 성장률은 올해 5%대에서 내년 4%대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됐다. 김 원장은 “세계와 국내 경기는 내년 하반기부터 코로나 기저효과를 반납하고 경기 하향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경제의 부진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 부원장은 “중국 정부가 사교육 게임 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소비투자가 위축될 것”이라며 “올 하반기 성장률이 예상치를 밑도는 것은 물론 내년 성장률도 5.5%에 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허 원장은 “중국이 헝다 위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내년 성장률이 3%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며 “중국을 최대 수출시장으로 삼는 한국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탈탄소화가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 요소수 대란이 불거지고 최근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한 것은 탈탄소화에서 비롯했다”며 “탈탄소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급망 교란이 수시로 빚어지고 그만큼 물가도 뜀박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표자들은 기업 투자역량을 북돋기 위한 규제혁신과 정책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 원장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선진국 수준만큼의 규제혁신이 진행돼야 한다”며 “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요구된다”고 말했다.
홍 원장은 “디지털·친환경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 맞춰 선제적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기반시설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 원장은 “원료·소재를 확보하기 위한 자원개발 사업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며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국내 생산기반 확충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기업에는 ‘몸집 불리기’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배 전무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기업은 외연 확장보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기술 경쟁력 향상 등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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