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인텔 CEO '파운드리 담판'…삼성 촉각 곤두세우는 이유

입력 2021-12-15 14:57   수정 2022-01-14 00:01


대만 등 아시아 지역 출장 중인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사진)가 마크 리우 TSMC CEO를 만나 직접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협상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가 추진 중인 반도체 지원 법안의 해외 기업 보조금 지급을 두고 양사가 신경전을 벌인 직후여서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역시 두 기업의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인텔과 TSMC의 협상 내용에 따라 삼성전자의 내년 파운드리 운용 전략과 점유율도 큰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 "팻 겔싱어, 까다로운 균형잡기 필요"
15일 반도체 업계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주 대만 출장길에 오른 겔싱어 CEO는 리우 CEO 등 TSMC 고위 임원들과의 회동이 유력시된다. 겔싱어 CEO의 아시아 방문은 올 초 인텔 CEO로 임명된 뒤 처음이다. TSMC가 내년부터 양산할 예정인 3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초미세 공정을 활용해 인텔의 차기 중앙처리장치(CPU)를 생산하는 내용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텔은 TSMC의 최선단 제조 능력이 필요한 동시에 파운드리 업계에서 TSMC와 경쟁할 계획을 갖고 있다"며 "인텔의 CEO로서 매우 까다로운 균형잡기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만 출장은 미 정부의 반도체 지원 법안을 두고 겔싱어 CEO가 TSMC에 날을 세운 직후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는 최근 "반도체 지원 법안은 미 납세자의 돈으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 기업에만 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자 TSMC는 "그렇게 하는 건 미국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받아쳤다. 리우 CEO는 한 발 더 나아가 "인텔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동료(인텔)를 공격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 미국 하원에는 520억 달러(한화 약 61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이 계류 중이다. 여야 합의가 지연되면서 해당 법안 처리는 내년으로 넘어갈 전망. 미국 이외의 기업도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면 텍사스에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제2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한 삼성전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겔싱어 vs 리우 '수싸움' 치열할 듯
반도체 생산 시설의 아시아 편중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 온 인텔은 TSMC와 계약을 맺어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동시에, 향후 파운드리에서 3나노 공정 이후 초미세 공정으로 직행해 TSMC를 추월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갖고 있다.

TSMC 입장에서는 전 세계 컴퓨터 프로세서 시장의 80%를 장악한 인텔과의 계약이 꼭 필요하다. 높은 수익과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한 인텔이 파운드리 기술을 따라오거나 추월할 경우 막강한 경쟁사로 부상할 가능성도 높다. 인텔과의 협상이 어려운 이유다.

인텔은 자체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갖췄지만 3나노 진입을 앞둔 TSMC와 삼성전자에 비해 기술적으로는 뒤진 상태다. 때문에 차세대 CPU 양산을 TSMC에 맡기려 하고 있다. 파운드리만 전문적으로 하는 TSMC와 달리 자체 설계도 가능한 종합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는 인텔이 기술 유출을 우려해 꺼리는 상황이다.

인텔이 전문 파운드리 업체인 TSMC를 우선 협상 대상자에 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양사 간 협상이 틀어질 경우 인텔의 대안은 사실상 삼성전자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3사간 복잡한 구도가 형성됐다.

인텔은 자체 생산과 TSMC가 맡게 될 외주 생산 비중, 파운드리 가격 등을 두고 리우 CEO와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것으로 관측된다. TSMC가 이미 애플로부터 3나노 생산라인 상당 부분을 수주한 상태여서 인텔의 물량을 맡을 여력이 있을지 파악하는 것도 출장 목적으로 읽힌다. 인텔로서는 라이벌인 애플이 같은 외주사에 차세대 CPU를 맡기는 것 역시 기술 유출 문제로 번지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삼성전자, 3나노 선제 가동으로 몸값 높인다
삼성전자가 인텔과 TSMC의 협상 결과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사의 논의가 원활하면 삼성전자에 악재지만 틀어지면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 3나노 공정에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술을 적용하겠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전력 효율을 높인 기술로, 삼성전자는 이를 상반기에 적용해 하반기 가동 계획을 세운 TSMC보다 앞서 적용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매출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53.1%, 삼성전자는 17.1%다.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노리는 삼성전자로선 TSMC와 좁혀야 할 격차가 크다. 내년은 3나노 공정을 앞세워 TSMC를 따라잡으려는 만큼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인텔 물량 수주가 필수적이다.

삼성전자는 TSMC의 '이탈 고객'을 노리고 있다. AMD는 TSMC가 애플 제품을 우선 생산하려 하자 4나노 공정의 크롬북 CPU 생산을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퀄컴도 지난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5나노 공정으로 생산한 '스냅드래곤888'로 파트너십을 맺은 이래 '스냅드래곤888플러스', '스냅드래곤8 1세대'까지 삼성전자에 생산을 맡길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텔과 TSMC, 삼성전자의 역학구도가 참 묘하다. 팹리스, 파운드리, 종합반도체라는 각사의 특수성에 한국·미국·중국·대만이라는 국제 정세까지 맞물려 있다"면서 "인텔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년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 운영 전략이 바뀔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인텔과 TSMC 간 협상 결과가 어떤 방향으로 나와도 삼성전자에 온전한 이익이나 온전한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압도적인 3나노 기술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외교 채널 가동을 비롯한 '플랜B' 등 여러 카드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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