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서 주목받는 미세잔존암…‘MRD-음성’ 측정 중요성↑

입력 2021-12-16 11:44   수정 2021-12-22 06:59

최근 혈액암 치료제 개발에서 완전관해(CR·complete remission)보다 엄격한 기준인 ‘미세잔존질환(MRD·minimal residual disease)’ 측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MRD가 암의 재발을 일으킬 수 있는 인자여서다. MRD가 강조되면서 기업들도 관련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MRD-음성’은 일반적인 CR보다 ‘완치’에 더 가까운 상태다. MRD-음성은 치료 이후 0.01% 미만의 암 세포가 검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혈액암에서는 치료 후 암 세포가 5% 미만으로 발견될 때 CR이라고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MRD-음성 도달은 CR의 ‘질(퀄리티)’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치료 후 MRD 검사로 재발 가능성 확인
암 치료는 진단 후 항암치료를 통해 CR을 획득하기 위한 과정이다. 기존에는 혈액암에서 CR 달성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치료 이후 검사를 진행해, 암세포가 5% 미만으로 줄었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기존 CR 검사에서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암 세포를 검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치료 후에도 몸 안에 미세 암 세포가 남아 있으면 재발을 일으킬 수 있다. 잔존 암 세포가 확인되면 암 치료가 효과적이지 않았거나, 암 세포가 치료 약물에 내성을 갖게 됐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혈액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한 기업의 관계자는 “암 치료 후 CR 도달을 확인하기 위해 혈액암에서는 일반 혈액검사나 화학 발광 면역분석법을 통해 암 세포수 검사를 진행하고, 고형암에서는 암 크기를 측정한다”며 “CR 도달은 주로 형태학적 관찰에 의존하고 있어, 재발의 원인이 되는 MRD를 민감하게 검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치료 이후에 MRD 검사를 통해 남아있는 암 세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특히 MRD는 혈액암에서 강력한 재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이 관계자는 “혈액암 환자들은 표준 치료 이후에도 재발률이 높은 편”이라며 “CR에 도달했더라도 MRD가 발생할 경우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MRD 여부는 유세포 분석 등을 통해 파악한다. 유세포 분석은 고속으로 흐르는 유체(sheath flow) 상에 존재하는 세포 또는 입자를 분석한다. 또 유전자증폭(PCR),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등이 활용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암 세포가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MRD-양성’으로 판정하고, 암 세포가 0.01% 미만으로 검출되면 MRD-음성 판정을 받는다.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MRD를 측정하는 명확하고 표준화된 기준이 정립되지는 않았다. 또 혈액암의 종류에 따라 사용되는 MRD 검사의 유형도 다르다.
“MRD, 혈액암 완치 확인 지표될 것”
최근 혈액암 임상에서는 MRD-음성 도달률이 주요 평가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여러 연구를 통해 MRD-음성에 도달한 환자는 양성에 비해 무진행생존기간(PFS) 및 전체생존기간(OS)의 개선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브비는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CLL) 환자를 대상으로 한 ‘벤클렉스타’(성분명 베네토클락스)의 임상 3상에서 MRD를 평가했다. CLL에서는 유세포분석 및 PCR로 MRD를 검사한다.

3상은 이전에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벤클렉스타와 가싸이바 병용치료 종료 30개월 후 말초 혈액에서의 MRD를 평가한 결과, 26.9%에서 MRD가 검출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했다. 대조군인 클로람부실과 가싸이바 병용투여군에서 3.2%를 기록한 것과 큰 차이를 보였다. MRD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재발의 위험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애브비의 설명이다.

존슨앤드존슨(J&J)의 자회사 얀센은 골수종에서 MRD-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는 재발 위험이 낮아져 생존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골수종에서 MRD-음성 도달은 유세포 분석과 양전자 컴퓨터 단층촬영(PET-CT)와 같은 영상 기술을 통해 한다.

얀센은 적어도 3가지 약물에 노출된 재발성 및 불응성 다발골수종 환자를 대상으로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실타캡타진 오토류셀’의 임상 1b·2상을 진행했다. 임상에서 평가 가능한 환자의 93%는 MRD-음성 상태에 도달해, 완치의 기대감을 높였다고 했다.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ALL)에서는 MRD의 여부에 따라 치료 전략이 바뀔 수 있어, MRD가 새로운 치료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종합암네트워크(NCCN) 및 유럽종양학회(ESMO) 등은 MRD 관찰(모니터링)을 통해 양성 환자에게는 강화된 항암요법으로 음성을 달성할 수 있도록 치료 전략을 수정하라고 권고한다. 음성 환자는 항암제의 종류나 용량 등을 조절해 치료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향상시키도록 했다.

또 ALL 치료에서는 MRD-음성 달성 여부가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조혈모세포 이식의 성공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젠의 ‘블린사이토’(성분명 블리나투모맙)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MRD-양성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다. 임상에 따르면 103명의 환자 중 80%에 해당하는 82명이 블린사이토 투여 1주기 후에 MRD-음성을 달성했다. 또 장기 추적 연구 결과에서 MRD 치료 반응을 보이지 않은 환자군은 14.4개월의 OS를 보인 반면, MRD-음성 달성 환자군의 OS는 추적 관찰 59.8개월 시점에서도 중앙값을 도출할 수 없었다. 이는 블린사이토 치료로 MRD-음성에 도달하면, 장기간 생존 및 완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치료제 개발에서도 MRD-음성 도달을 확인하고 있다. 애브비의 벤클렉스타는 현재 75세 이상 고령이거나 집중 유도화학요법에 적합하지 않은 AML 환자의 1차 유도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애브비는 최근 발표한 벤클렉스타와 데시타빈의 병용 2상 중간결과에서 60세 미만의 젊은 성인 환자에게서도 MRD-음성을 달성했다고 했다. 벤클렉스타와 데시타빈 병용 투여 1주기 후 MRD-음성 도달률은 64%, 2주기 투여 후에는 73.9%로 상승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가 미국 앱토즈에 기술이전한 ‘룩셉티닙’의 1상에서도 MRD-음성이 확인됐다. 앱토즈는 재발된 ‘FLT3-ITD’ 돌연변이 AML 환자에게서 MRD-음성이 확인됐다고 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 관계자는 “혈액암에서 MRD-음성 환자는 일반적인 CR 환자보다 OS가 더 좋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다”며 “MRD를 파악하는 것이 혈액암 환자에 더 나은 치료 결과를 제공하고, 최종 목표인 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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