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관지 환구시보의 강성 애국주의 성향을 이끈 후시진(胡錫進·61) 편집인이 16년 만에 물러난다.
후 전 편집인은 16일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라오후(자신의 애칭)는 새해가 되면 62세가 된다. 이제 은퇴할 때가 왔다"며 "현재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퇴직 후에도 환구시보 특약 칼럼니스트 신분으로 기고를 통해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소셜미디어 자기 소개란도 '환구시보 특약 평론원'으로 수정했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자매지다. 인민일보 국제부 출신인 후시진은 환구시보 부편집인을 거쳐 2005년부터 편집인을 맡았다.
1993년 1월 인민일보 특파원들의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창간된 환구시보는 현재 200만 부 가까이 팔리는 대륙 대표 매체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후 전 편집인이 부임한 후 2009년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를 창간했고, 그는 영문판 편집임도 겸했다.
후 전 편집인은 6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대중적인 영향력이 큰 언론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 전 편집인의 막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이 호주와 경제적 갈등을 빚자 "호주는 항상 소란을 피우며, 중국의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처럼 느껴진다. 가끔 돌을 찾아서 문질러줘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웨이보에 게재했다.
한국이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도입했을 때엔 환구시보 사설로 "(사드를 지지하는) 한국 보수주의자들은 김치만 먹어서 멍청해진 것이냐"는 주장을 했다.
또한 그룹 방탄소년단(BTS)가 '밴 플리트상' 수상 소감 중 한국 전쟁 발언을 했을 때 "중국을 무시한다"면서 집중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은 후 전 편집인의 공격적인 성향을 우회적으로 활용하면서 당국이 직접 입장을 밝히거나, 인민일보, 중국중앙(CC)TV 등을 통해 할 수 없는 거침 표현을 전달하도록 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후 전 편집인의 별명이 '중국 공산당 비공식 대변인'인 이유다.
그렇지만 지나친 민족주의 성향으로 "중국은 늘 옳고, 서방은 무조건 나쁘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중국 내에서도 "건전한 발전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거친입'으로 논란을 일으켜도 승승장구했던 후 전 편집인은 지난해 환구시보 부편집인 돤징타오가 그의 혼외자를 당국에 고발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후 편집인이 오랫동안 전현직 직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2명의 혼외자를 두고 있다"는 것. 또한 언론인으로서 모으기 힘든 거액의 자산을 축적했다는 폭로도 있었다.
당시 후 전 편집인은 "모함이다"고 부인하고, 감찰 당국은 지난 1월 "고발 근거가 없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이런 논란 자체가 후 전 편집인을 교체하는 신호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수십년간 공산당에 충성한 후 전 편집인의 기여를 감안해 '명예롭게' 떠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준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후 전 편집인의 후임으로는 인민일보 국제부 부주임인 우치민(吳綺敏)이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