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물의 유통을 막기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일명 n번방 방지법)을 둘러싼 공방이 인터넷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칠게 일고 있다. 해외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성범죄 동영상이 유포돼 큰 물의를 일으킨 ‘n번방 사건’ 이후 대책으로 마련된 게 이 법이다. 범죄적 불법 영상의 유통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법 시행과 동시에 재개정 논의가 나온 것은 이 법이 카카오톡의 오픈채팅방,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까지 사전 검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교류 공간에 대한 사전 검열이 빚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반발에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통신비밀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불만이 있다. 카톡 등 오픈채팅방의 영상까지 검열할 수 있는 n번방 방지법 이대로 갈 것인가, 보완이 필요한가.
이 법은 부가적 통신사업자(기업)에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물을 삭제토록 하고 접속도 차단하게 하는 등 유통 방지와 기술적·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렇게 강력한 대응이 있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이었다.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이런 필터링이 적용됐지만, 어디까지나 오픈채팅의 단체방에 올라가는 동영상이 그 대상이다. 사적 대화는 대상이 아니어서 사전 검열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뒤늦게 문제로 제기된 ‘검열 공포’는 법 제정 과정에서도 이미 불거진 것이었다. 더구나 당시 야당도 찬성해 법안이 통과됐는데, 시행하자마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법 흔들기나 다름없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디지털 성범죄를 추방하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 법은 오히려 그 출발점일 뿐이다.
이런 범죄로 희생당한 당사자나 그 가족 입장을 한 번 생각해보라. 강력한 법이 없다면 현대사회의 이런 흉악 범죄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반대론자들은 최소한 대안이라도 내놓고 반대해야 한다. 과잉 검열 논란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법을 시행하면서 운영의 묘를 발휘하고, 필요하면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해소 가능하다. 재개정을 주장하는 야당 쪽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이 법에 찬성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불법으로 촬영된 디지털 범죄와 기타 흉악 범죄를 처벌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를 빌미로 국민의 일상이 된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하는 게 명확한 과잉 대처라는 사실이다. 여러 나라가 온라인의 유해 영상물을 다각도로 단속·추방하고 있지만 한국처럼 해당 기업에 사전적 책임을 의무화한 곳이 있나. 더구나 문제가 된 텔레그램은 서버가 나라 밖에 있어 정작 이 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을 저지른 주체는 손도 못 댄 채 엉뚱한 네이버 카카오 등만 검열한다면 실효성도 타당성도 없다. 그러면서 위헌 논란까지 유발하고 있다.
인터넷 성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는 다른 법이 얼마든지 있다. 현실에서 도움도 되지 않는 법 때문에 국민 기본권이 침해받는다면 빈대 잡자고 집 다 태우는 격이 된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법을 현실성 있게 고쳐야 한다. 필터링이라는 명분 아래 해당 기업에 부과되는 과도한 의무를 완화해야 한다. 개발된 지 4개월가량 된 필터링 기술은 완전하지도 않다. 언론의 자유와 통신의 비밀 보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침해돼선 안 된다. 국민청원이 왜 나오는지 근본 이유를 볼 필요가 있다.
SNS 등을 제공하는 기업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필요하다. 혐오 범죄는 추방하고 예방도 하되 국민 기본권을 철저히 보장하는 것, 두 마리 토끼 다 잡기가 중요하다. 운영의 묘를 살리며 급히 제정된 법을 보완할 필요도 있다. 정부의 민간사찰 논란이 오래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법은 최대 다수가 수긍하고 수용할 때 지킬 수 있는 사회적 규율이 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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