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소송(정답 취소 소송)에서 지난 15일 승소를 이끌어낸 김정선 일원법률사무소 변호사(사진)는 1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김 변호사는 무료 변론을 통해 3000만원을 들여 대형 로펌을 선임한 평가원과 공방을 벌였다. 그는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어른으로서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학생들의 노력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 네이버 카페 등을 통해 학생들과 자료를 수시로 공유했다. 학생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교수들에게도 도움을 청하자”는 의견을 냈다.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대 석좌교수 측과 밤새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도 학생들이었다. 김 변호사는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SNS로 홍보하는 역할까지 도맡았다”고 소개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시간 부족’을 꼽았다. 그는 “수능 성적 발표 전 집행정지 가처분을 받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소장을 내야 했다”며 “소장을 내야 하는 날 저녁 법원 서버가 마비돼 전자접수가 안 돼서 가슴을 졸였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재판부가 직접 문제를 풀어본 점이 승소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며 “판결문을 보면 담당 판사가 학생들의 풀이 과정을 공부하고, 직접 문제를 풀어 이해한 것이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올해 수능 연계 EBS문제집에서 이번 수능 문제와 같은 유형으로 나왔던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EBS 문제 역시 똑같은 오류였는데, EBS는 이를 인정하고 수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김종일 서울대 의대 교수가 내준 의견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보람 있고 행복한 2주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상처받은 학생들에게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 기쁘다”며 “학생들의 인생이 달린 시험의 오류를 그냥 넘기고, 성의 없는 의견서로 수많은 학생의 미래를 결정하려고 한 평가원과 관련자의 사과·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이 문제에 침묵으로 일관한 국내 학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약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학생들이 자문의견서를 국내 학회 등에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답변을 받지 못한 게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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