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엔 또 하나의 고민이 있다. 법을 제정한다고 한들 ‘대포폰(본인 명의가 아닌 휴대폰)’ 사용자 등 작정한 탈세자들을 어떻게 잡아내느냐가 골칫거리다. 당근마켓은 대다수 인터넷 사이트와 달리 통신사 등을 통한 본인 인증 없이 휴대폰만 있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C2C 플랫폼 회원의 대포폰 사용 문제에 관해서도 관계 부처와 논의 후 대처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근마켓의 회원 가입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주거지 혹은 원하는 거래 지역을 고른 뒤 휴대폰 번호만 입력하면 된다. 문자로 인증번호를 확인하는데 이는 단순히 사용자가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묻는 절차다. 건당 20원이 들어가는 유료 서비스인 통신사를 통한 본인 인증과 다르다. 이 같은 초간편 가입 절차 등의 편리함 덕분에 2015년 창업한 당근마켓은 국내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2018년 말 50만 명 수준이던 월간 사용자 수(MAU)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600만 명을 기록했다.
누적 회원 수는 약 2200만 명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국내 2092만 가구를 기준으로 거의 모든 가구가 가입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공룡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무방한 규모다. 이 같은 성장성 덕분에 당근마켓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2270억원을 투자받았다. 기업공개(IPO) 시 3조~4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처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용현 당근마켓 공동 대표는 “2023년까지 30개국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라며 “세계를 무대로 동네 커뮤니티를 모바일로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번개장터, 중고나라, 헬로마켓 등 당근마켓과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는 플랫폼을 비롯해 거의 모든 전자상거래 기업은 통신사를 통한 본인 인증은 기본이고 성명, 생년월일, 주소(이메일 등)를 회원 가입 시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지적에 대해 당근마켓 관계자는 “본인 인증을 의무화하면 고령층 등 디지털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당근마켓을 이용할 권리를 빼앗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기 등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당근마켓 측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전화번호, 거래 내용, 추적을 위한 계좌번호 등 경찰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휴대폰 번호는 물론이고 이름과 주소를 수집할 경우 이마저도 넘겨질 수 있다는 가정이 제기되자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은 공정위 안에 제동을 거는 입법안을 쏟아냈다. 급기야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 과소수집의 원칙에 따라 당근마켓의 초간편 가입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권고안을 내놨다. 공정위의 초강수로 인해 범죄 및 부정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규칙마저 휴지통에 한꺼번에 들어간 셈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표 C2C 플랫폼인 크레이그스리스트가 온라인 성매매 수단으로 악용된 사례처럼 당근마켓 역시 예기치 않은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의 중고거래 플랫폼은 물론이고 영국 검트리, 캐나다 키지지 등 대부분의 해외 C2C 플랫폼은 가입 시 본인 인증을 거친 이메일 주소를 요구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수집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은 플랫폼의 당연한 의무인데도 당근마켓은 개인정보 침해를 이유로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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