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외에 국가가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화폐를 발행하거나 돈을 빌리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빌리려면 금융시장이 있어야 한다. 돈을 빌려줄 은행이나 국채를 인수할 채권시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금융시스템이 부족한 나라들이 재정이 부족할 때 악화(惡貨)를 발행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로마조차도 제정후기에 데나리우스 은화의 은 함량을 100분의 1 이상 줄여 밀 가격이 200배나 폭등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금융시스템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의 재원 마련 방안은 당백전밖에 없었던 듯하다.
작은 도시국가로 구성된 중세 이탈리아의 상황은 달랐다. 작은 나라들은 제국의 권위에 의지하는 데나리우스 같은 화폐를 발행할 수 없었다.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12세기 베네치아는 전쟁비용 마련을 위해 프레스티티(prestiti)라는 국채를 최초로 발행했는데, 이 채권은 시장에서 유통되며 미래를 위한 시민들의 투자수단이 되기도 했다. 국가뿐만 아니라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생겨났고, 이는 근대적인 금융시스템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산업혁명이 왜 중국이 아닌 유럽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있었다. 서기 1000년경 중국은 인구도 많았고, 세계 최고의 농업 생산성을 보였으며, 활자로 인쇄된 종이책과 화약도 사용했다. 발달한 수력공학으로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운하망을 만들기도 했다. 금속공학도 최고였으며 증기력도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증기기관차는 중국이 먼저 발명하지 못했을까?
윌리엄 괴츠만 예일대 교수는 그의 저서 《금융의 역사》에서 이에 대한 답을 금융의 존재 여부에서 찾는다. 유럽은 증기기관차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에 자본을 대고 과실을 공유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중국은 그렇지 못했다고 한다. 중국은 앞선 초기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금융을 통해 기술발전을 계속 뒷받침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의 자산을 미래의 자산으로 바꾸고, 현재의 비용을 미래로 이전하는 금융기술이 산업혁명의 숨은 공로자였던 셈이다.
오늘날 금융은 날로 발전해 선물, 옵션, 공매도 등 고도화된 신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때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돼 금융회의론까지 대두되기도 한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금융을 통해 경제의 위험이 재구성되고 현재와 미래의 가치가 교환될 수 있으며, 이것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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