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시대' 헤매는 미국…더 흔들리는 증시 [정인설의 워싱턴 나우]

입력 2021-12-20 06:26   수정 2021-12-20 09:19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한꺼번에 불거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주변에 전운이 감돌고 있고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양안 갈등이 깊어질 조짐입니다.

미국이 강력하게 개입하기도 그렇고, 뒷짐 지고 싸움 구경 하듯 할 수 없는 사안들입니다. 이른바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바이든식 안보의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미국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보는 경제에 큰 영향을 줍니다. 우크라이나발 리스크로 인해 가뜩이나 불안하던 천연가스 가격은 더 치솟고 있습니다. 대만 때문에 미·중 대립이 격화되면 반도체 가격 뿐만 아니라 글로벌 증시의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번주는 갈수록 안보와 경제의 연관성이 커지는 이른바 '안·경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유튜브 채널 '한경 글로벌마켓'의 '정인설의 워싱턴나우'로도 제공해드립니다.

소련 해체 30년 만에 최고조에 달한 우크라이나 갈등

옛 소련은 1991년 공식적으로 없어졌습니다. 그 해 12월 8일 소련의 핵심 멤버였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대통령들이 소련 해체에 합의하는 벨라베자조약에 서명했습니다. 대신 독립국가연합(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의 창설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12월25일에 러시아 최고인민회의가 국명을 ‘러시아사회주의공화국연방’에서 ‘러시아연방’으로 바꿨습니다. 서방세계의 크리스마스 날에 냉전 시대의 산물인 소련이 사라진 것이죠.

그로부터 정확히 30년 후 러시아 내부엔 그 어느 때보다 '소련 향수병'이 심합니다. 잃어버린 30년을 만회하기 위해 옛 소련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여론도 러시아 내에서 강합니다.

이런 시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 정책은 러시아 정부와 국민들에게 좋은 명분이 됐습니다. 냉전 시기 옛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NATO가 체코, 폴란드, 헝가리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NATO에 대응하는 공산권 군사동맹인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죠. 이어 옛 소련 구성국이던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까지 같은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여기에 러시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애착을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까지 NATO에 가입하려 하자 러시아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하고 NATO의 동진을 멈추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걸 무력 개입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약 10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고 주요 장비를 국경 쪽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CNN은 위성사진을 통해 러시아 병력과 장비가 우크라이나 국경 30마일(약 48㎞) 지점까지 접근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정보당국 문건을 입수해 러시아가 병력 17만5000명을 동원해 내년 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행동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얘기 나올 때마다 가스 값 급등

우크라이나발 위기로 인해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 16일 한때 ㎿h당 145유로까지 올라 10월 초 기록한 사상 최고치(155유로)에 근접했습니다.세계 최대 천연가스 보유국인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보급 통로가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죠.


요헨 호만 독일 연방네트워크청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의 직통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가동 승인을 보류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1년 전 대비 여덟 배 수준으로 오른 천연가스 가격이 더 급등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유럽 국가들은 천연가스 소비량의 43%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죠. 유럽의 천연가스 대체 수요가 미국으로 쏠리면서 미국산 LNG를 수입하는 아시아 국가들까지 수급난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이런 러시아의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심각한 경제적 제재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다음날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도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을 규탄하며 강력 대응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 개입 가능성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학습효과 때문에 참전은 배제하고 있는 것이죠.

이 때문에 막판 합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러시아가 강하게 나오는 게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력 증강을 시도하자 6월 제네바에서 미·러 정상회담이 열린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번에도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집결시키자 미·러 정상 간 화상 통화가 마련됐다고 해석했습니다. 러시아가 무력을 쓰려할 때마다 미국이 협상에 나서려 했다는 것입니다.
대만의 반전이 호재인가 악재인가

대만에선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열세였던 여론조사 예상을 뒤엎고 차이잉원 총통이 중간평가에서 승리했습니다.18일 치러진 차이잉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4개 안건이 모두 부결됐습니다.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제4 원자력발전소 상업 발전 개시, 타오위안 천연가스 시설 이전, 국민투표일과 대선일 연계 등 4개 안건을 두고 투표를 했는데 모두 반대표가 많았습니. 이들 안건은 모두 야당인 국민당이 제안한 것이라 차이잉원 정부의 4대0 완승으로 끝난 것입니다.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던 것은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금지 안건입니다. 대만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지난해 12월 락토파민 성분이 든 사료를 먹인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시작했습니다.

가축 성장 촉진제 성분인 락토파민은 어지럼증 등 부작용 탓에 대만에서 사용이 금지된 약물입니다. 야당은 ‘락토파민 돼지고기’가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총공세를 폈습니다. 그러나 대만 국민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실어준 것이죠.

미국과 대만의 관계가 가까워지면 대만과 중국의 관계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나아가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전략경쟁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 대만 문제에도 개입 최소화하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는 중국과 대만 관계와 비슷합니다. 러시아와 중국 입장에서 같은 국가, 같은 민족입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자국 영토로 생각하는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면 중국 역시 대만을 다룰 때 대담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면 중국도 대만 문제에 똑같은 잣대를 기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화상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만 정책 변화가 없다고 하자 중국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이 대만의 독립에 반대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미국이 지지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우크라이나는 그냥 조용히 있었음 하는 이슈입니다. 공화당에 공격 빌미를 줘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와 차남 헌터의 의혹에 대해 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대러시아 방어를 위해 마땅히 지원해야 할 군사원조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미 정계와 의회가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대북문제까지 불거진다면
미국 정책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중국입니다.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이 미국 중심의 패권을 넘보지 않게 않는 것입니다. 중국은 아시아 내 중국 위상인 인정하라고 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싹부터 잘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환으로 중국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해 중국을 세계적으로 고립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재편해 중국의 경제력 성장을 최대한 억제시키려 합니다.

내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보이콧이나 대중 제재도 대표적 사례입니다.

하지만 중국을 고립시키려 하는데 러시아가 등장하는 건 미국 입장에서 반길 일이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규정해서 뭉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는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우크라이나와 대만 주변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까지 가세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잠잠하지만 내년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가만히 있을까요. 다시 미국과 협상을 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그러는 것처럼 한반도 내 긴장감을 높일 수 있다는 게 많은 안보 전문가들의 예상입니다.

게다가 내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에 들어가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집권 10년을 시작하는 해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중간선거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몸값을 높이기 위해 미국을 상대로 지렛대를 쓰려 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의 돈풀기...미국의 인플레 계속되나

지정학적 리스크 외에 이번주에 주목할 만한 일정은 중국인민은행의 움직임입니다. 20일 대출우대금리를 결정하는데요. 지난 6일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며 시장에 220조원이 넘는 유동성을 풀었죠. 미국과 영국 등이 긴축으로 전환한 것과 달리 중국이 이번에도 돈풀기에 나설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주 후반엔 인플레이션 지표가 관전포인트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금요일 24일이 뉴욕증시 휴장이죠. 그래서 하루 앞서 23일 목요일에 미국의 11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공개됩니다.

PCE 물가지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비해 더 많은 품목을 집계하는 지표로 Fed가 물가 상황을 파악할 때 참고하는 핵심지표죠. 11월 PCE 물가지수는 5.7%가 예상됩니다. CPI가 6.8%였는데 PCE도 아주 높아지죠. 10월 PCE 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상승하며 1990년 11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었는데요. 훨씬 올라가는 거죠죠. 예상치보다 높으면 증시에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안·경 시대'의 미국의 안보 딜레마와 인플레의 정점을 확인해 보는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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