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 11개월이 넘도록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않으며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한국을 제외한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 동맹국들엔 핵심 인사들을 대사로 임명하며 일각에선 한·미 동맹에 균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이 가운데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가 주한 미국대사 임명 지연이 문재인 정부의 외교 탓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으며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월 출범 후 지금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본국으로 돌아간 해리 해리스 전 대사가 떠난 뒤 현재까지 부대사들이 대사대리를 맡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로버튼 랩슨 부대사가 임시로 대사직을 담당하다 지난 7월 본국으로 돌아갔고, 현재는 크리스 델 코르소 부대사가 대사대리로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 NBC방송은 지난 16일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한국 대사 지명 지연으로 오랜 우방인 두 나라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는 게 복수의 전·현직 행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라며 한국은 후보조차 없이 일본과 중국에 후보자를 두는 것은 모욕적인 일”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명을 서두르더라도 주재국 동의(아그레망), 공식 지명 발표, 연방의회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전체회의 표결 등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최소 1년여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유독 주한 대사의 임명이 늦어지며 일각에서는 한·미 동맹에 균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5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인 캐럴라인 케네디 전 주일대사를 주호주 대사에 지명했다. 18일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람 이매뉴얼 전 시카고 시장을 임명했다. 첨예한 패권경쟁을 펼치고 있는 주중 대사로도 지난 16일 니컬러스 번스 전 국무부 차관이 인준되기도 했다.
11개월을 넘긴 주한 미국대사 공석 사태를 두고 한·미 양국에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가 이를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해 파장이 예상된다. 무토 전 대사는 21일 일본 ‘재팬비즈니스프레스’에 기고문을 올리고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인데다가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톱클래스 국가인데 주한 대사 지명이 11개월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문재인 정권이 미국의 전략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치적 욕망만으로 외교 판단을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무토 전 대사는 “(한국은)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망에 가담하지 않고 중국의 ‘한·미 이간책’에 조종되고 있다”며 “문 대통령의 머릿속은 한반도 종전선언 일색이고 (미·중) 신냉전에 맞춰 중국과의 관계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미국은 대중 포위망 형성에 있어 한국과의 공조를 계산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그러니 대한(對韓) 외교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무토 전 대사는 2017년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책을 집필하는 등 일본 우익 진영에서 대표적인 혐한 인사로 손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전직 주한 대사로서 우리나라와 제 3국과의 관계에 대해서그런 언급을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한·미 동맹은 역대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한·미 양국의 공통된 평가”라고 말했다. 주한 미 대사 공석 장기화에 대해선 “우리 정부가 언급하는 게 적절치는 않지만 미국 정부 역시 가급적 조기에 주한 미국대사 지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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