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광고'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김병희의 광고이야기]

입력 2021-12-21 17:14   수정 2021-12-22 00:09

광고란 무엇일까? 물론 상품이나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판매를 유도하기 위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이것만으로 디지털 시대의 광고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네트워크 기술은 미디어 환경을 바꿨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광고의 생태계를 바꿨다. 광고의 기능도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콘텐츠를 매개로 플랫폼에서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변했다.


한국 최초의 신문광고인 세창양행 광고(한성주보 4호, 1886. 2. 22)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 지금과 달리 광고라 하지 않고 사랑 고백처럼 ‘고백’이라 표현한 점이 흥미롭다. 광고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1971년에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창립됐고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 우리 광고산업은 1970년대 이후 도입기를 거쳐 1980년대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6년에는 세계광고대회가, 1999년에는 세계광고주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돼 국내 광고의 개방과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1998년에는 업계 최초로 제일기획이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광고회사의 기능도 광고 업무의 단순 대행에서 컨설팅 제공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어 광고의 도약기를 거쳐 현재 디지털 융합 시대에 이르고 있다.

디지털 융합 시대의 핵심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인데, 디지털 영토 확장이 시급한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디지털 영토는 세 영역으로 구성된다. 먼저, 기술에 해당되는 디지털 테크 영역이 있다. 5세대(5G) 이동통신이나 인공지능(AI) 기술에서 국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유통망에 해당되는 디지털 플랫폼 영역이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유통망을 장악하지 못하면 주도권이 없다. 디지털 플랫폼을 장악당하면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오징어 게임’ 같은 디지털 콘텐츠 창작이 중요하다. ‘오징어 게임’이 1조원을 벌었다지만 한국의 제작사는 고작 200억원을 받았고, 나머지는 넷플릭스의 수익으로 고스란히 돌아갔다. 광고산업 차원에서도 현재 가장 취약하고 시급한 분야는 디지털 플랫폼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균형 발전과 글로벌 유통을 책임질 토종 디지털 플랫폼을 시급히 육성해야 한다.
모든 영역 경계 무너지며 ‘하이브리드 전략’ 보편화
앞으로 광고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광고 환경의 변화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모든 영역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혼종(hybrid) 전략이 보편화됐다는 사실이다. 미디어 간의 경계, 광고와 다른 영역 간의 경계, 광고와 홍보 그리고 콘텐츠가 서로 섞이고 융합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광고 집행 기술이 발전하자 광고 창작 방법도 변화를 거듭했고, 콘텐츠의 융합에 따라 다양한 브랜디드 콘텐츠가 등장했다. 광고의 본질도 ‘널리 알리는 목적’에서 ‘폭넓게 모이게 하는 목적’으로 변하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광고 영역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생활형 가상 세계를 제시하며 광고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은 미디어 플랫폼의 다각화를 유도하면서 광고산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고와 테크놀로지가 결합된 ‘광고 기술(ad tech)’은 광고 형태와 기법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 주목받는 광고 기술은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그리고 홀로그램 기술이다. 나아가 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디지털 사이니지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같은 스마트 미디어를 활용한 광고는 소비자의 경험 영역을 계속 확장시키고 있다.
온라인 미디어 중심으로 광고도 ‘지각변동’
광고 영역에서 AI는 광고매체 효과 극대화, 마케팅 분석, 판매 촉진 활동, 광고 크리에이티브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의 광고회사 덴쓰(電通)는 2017년 5월에 AI 카피라이터 ‘아이코(AICO)’를 선보였다. ‘AI copywriter’의 약자인 아이코는 블로그와 뉴스 사이트에서 신문광고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학습한 뒤 멋진 광고 카피를 써냈다.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아이디어 발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사건으로, 인간의 달 착륙에 비견할 만했다.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광고 생태계에서 온라인 미디어는 미디어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미 텔레비전 광고를 비롯해 기존 미디어의 광고 영토를 빼앗고 있다. 모바일 광고, 스마트 광고, 온라인 광고, 디지털 광고 같은 용어가 복잡하게 쓰이고 있는데, 모바일은 기기의 특성을, 스마트는 기술적 특성을, 온라인은 네트워크의 특성을, 디지털은 1과 0이라는 이진수 숫자열의 특성을 나타낸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광고는 모바일 광고와 스마트 광고를 포괄한다. 온라인 광고에는 모바일 디스플레이 광고, 모바일 동영상 광고, 오디오 광고, 모바일 활성화 광고, 브랜디드 앱 광고, 위치기반 광고 같은 여섯 가지 유형이 있다.
포털 기업들 ‘동영상 광고’에 사활
온라인 광고 중에서 온라인 동영상 광고는 기존의 방송 광고를 넘어서 가장 강력한 광고 장르로 부상했다. 인기 유튜버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영상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강제 노출이 가능한 온라인 동영상 광고는 소비자는 불편할 수 있어도 광고주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여러 포털 기업은 동영상 광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짧은 광고 여러 개를 개인 맞춤형으로 만들거나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브랜디드 콘텐츠 전략을 시도할 수도 있다.

온라인 광고 체계는 더 복잡하다. ①소비자가 보는 광고 콘텐츠의 형식(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이 무엇인지 ②소비자들이 광고에 어떻게 반응(노출형, 검색형)하는지 ③소비자와 광고의 접점인 스크린의 크기나 형태(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PC, 스마트TV, 디지털 사이니지, 영화 스크린, 전광판)가 어떠한지 ④광고비를 산정하는 과금(課金) 체계가 어떠한지 같은 네 가지 관점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온라인 광고 체계나 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 이제, 역동적으로 변모해나갈 온라인 동영상 광고의 눈부신 내일을 지켜볼 일만 남았다.

광고 메시지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소비자들은 이제 능동적으로 광고를 수용하는 동시에 광고를 직접 만들어 소비하는 ‘생비자(生費者, prosumer)’의 역할을 자처한다. 광고의 성패를 결정하는 타깃 마케팅이 진화를 거듭하는 가운데, 소비자 정보를 더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정보를 활용해 소비자 개개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개인 맞춤형 광고가 인기다. 빅데이터 분석 기법과 알고리즘 기술이 최근 들어 급격히 발달하면서 개인 맞춤형 광고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했다.

소비자들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여러 개의 모바일 쇼핑 채널을 동시에 이용한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품을 구경하면서 현장에서 모바일로 결제하기도 한다. 유통기업들은 소비자들이 여러 채널을 동시에 이용해도 문제가 없도록 여러 개의 유통채널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옴니채널(omni-channel)을 도입했다. 기존의 멀티채널이 오프라인 매장, 온라인 쇼핑몰, 모바일 앱 같은 여러 채널별로 개별 매출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옴니채널은 독립 채널들을 연결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제공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채널을 비교하며 쇼핑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광고 거래 구조도 급변…플랫폼사가 주도
광고 거래 구조에서도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광고 시장에서는 ‘광고주→광고회사→매체사’ 또는 ‘광고주→광고회사→미디어렙→매체사’ 식의 거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모바일 광고가 활성화되자 플랫폼사가 주도하는 새로운 거래 질서가 떠올랐다. 거래 질서를 바꾼 원천은 실시간으로 경매하는 ‘프로그래매틱 광고(programmatic advertising)’ 기술이다. 이 기술은 광고업계에 태풍으로 다가왔다. 기존에는 사람 간의 거래를 통해 광고 구매가 이뤄졌지만, 이 기술을 적용하면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적으로 광고 거래가 이뤄진다. 소비자 행동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별 맞춤형 광고를 구현했다는 점이 프로그래매틱 광고의 가장 큰 매력이다.

디지털 기술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광고 유형을 창조했다. 디지털 사이니지(digital signage)는 디지털 미디어의 총아다. 1세대(신문), 2세대(라디오·영화), 3세대(텔레비전), 4세대(컴퓨터), 5세대(스마트폰·인터넷·모바일)라는 미디어의 발전 과정에서 디지털 사이니지는 6세대에 해당된다. 아날로그 방식의 옥외광고 대체 수단으로 출발한 디지털 사이니지는 도시 환경과 일상생활에 급속히 확산되며, 언제 어디에서나 기능을 발휘하는 광고 매체로 부상했다. 디지털 사이니지는 모든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모으는 접점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디지털 사이니지 광고는 앞으로 옥외광고 분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디지털 사이니지가 견인해가는 광고의 변모 과정을 경이롭게 지켜볼 일만 남았다.

도시의 건물 전체를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하는 디지털 미술관도 늘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벽에 그림을 걸지 않고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처럼 온 도시를 예술작품으로 도배하자는 구상을 제안했다. 복제 예술품의 이미지로 가득 찬 ‘벽 없는 미술관’을 구축해 모든 시대의 모든 예술을 개인이 감상하고 소유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의 주장은 건물 전체를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하는 미디어 파사드가 등장하면서 현실화됐다. 건물 외관에 빛을 비춰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미디어 파사드는 미디어 아트로, 광고의 표현 기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는 디지털 사이니지와 ‘옥외광고자유표시구역’의 꽃이기도 하다.
소비자 체험·브랜드 결합시키는 AI 역할 중요
미래의 광고산업은 우리가 지금껏 경험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직접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본격 적용되면 광고산업의 기반 자체가 완전히 재편될 수 있다. 그 근간은 AI를 비롯한 광고 기술이다. 인간이 AI에 지배당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이제 무의미해졌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렇지만 광고 분야에서도 AI의 위력을 결코 도외시할 수 없게 됐다. AI를 위협적인 기계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 해내기 어렵거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을 AI에 맡기면 광고 업무에서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다. IBM의 최고경영자인 지니 로메티는 AI 시대에는 블루칼라도 화이트칼라도 아닌 ‘뉴 칼라(New Collar)’ 계층이 떠오른다고 했다.

뉴 칼라란 AI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AI를 활용하는 사람만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광고의 미래는 소비자의 체험과 브랜드를 결합시키는 AI 기술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미래는 이미 도착해 있다. 한국 광고산업은 언론산업과 더불어 지난 50년 동안 쉬지 않고 걸어왔다. 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과제가 광고인들 앞에 놓여 있다. 인간의 상상력을 전제하지 않고 AI만 신뢰하는 것은 오만이며, 인간의 상상력만 신뢰하고 AI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다. 걸어갈 50년을 앞두고, 오만과 태만 사이에서 인간과 AI의 관계를 정립하는 문제가 정말 시급해졌다.

■ 김병희는

광고 기획자 출신으로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다. 현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PR학회 제15대 회장과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정부광고자문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디지털 시대의 광고 마케팅 기상도》를 비롯한 50여 권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을 썼다. 한국갤럽학술상 대상(2011), 제1회 제일기획학술상 저술 부문 대상(2012) 등을 수상했고, 정부의 정책 소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2019)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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