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중대재해법, 법정에선 통할까

입력 2021-12-21 17:23   수정 2021-12-22 00:12

지난 8월 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2019년 고객에게 대규모 손실을 안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의 불완전 판매에 손 회장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었다.

놀라운 것은 판결 이유다.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의무’만 법(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명시된 상황에서 ‘준수할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징계를 내린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법률상 허점이 1차적 원인이었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행정처분의 근거로 삼은 것도 문제였다. 1심 판결만으로도 무리한 법 적용에 대한 경종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기업인 기소만 늘릴 위험 커
요즘 중대재해처벌법 논란을 보면 자칫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꼴’이 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내년 1월 27일 시행인데도 중대산업재해 처벌과 관련해 모호한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행령 제정과 고용노동부의 해설서 발간 이후에도 책임질 경영자의 범위, 면책받을 수 있는 예방조치 수준, 도급관계 적용 여부 등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법률상 ‘경영책임자 등’(제2조 9호)에 대한 고용부 해석이 가장 어설프다. 기업의 경우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권한·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의무 이행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 기업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안전책임자의 격(格)을 부사장, 사장 등 ‘C레벨’(CSO·최고안전책임자)로 끌어올린 이유다. 그런데 고용부는 해설서에서 ‘CSO를 선임했다고 해서 CEO가 면책될 순 없다’는 해석을 내놔 빈축을 샀다. 두 사람 모두 책임져야 한다면, 법률상 ‘또는’ 이란 문언을 집어넣은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도급관계(법률), ‘필요한’ 예산 편성, 안전책임자의 업무 ‘충실 수행’(이상 시행령) 등 자의적 판단 여지가 큰 표현들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논란은 향후 법정에서 크게 불거질 공산이 크다. 안전관리체계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CEO가 기소되더라도 법원이 고용부 가이드라인과 다른 판단을 하고, 법적 미비점을 들어 기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수준의 법령으로는 기업인 기소만 잔뜩 늘리고 산업계를 위축시키는 부작용만 낳지 않을까 싶다.
'매'도 알고 맞아야 효과
이 경우 법률상 사실·인과관계를 중시하는 법원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사(특별사법경찰)한 고용부와 기소한 검찰의 의욕 과잉이 지적될까, 문제의 원천이 된 ‘졸속 입법’이 도마에 오를까. 그보다 ‘보여주기식’ 안전관리체계만 짜고 책임을 피할 궁리만 했다며 기업인을 희생양 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게 문제다.

중대재해법이 하한형(사망사고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 등 강한 처벌 규정을 담고, 넓은 법 적용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법 제정 효과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란 역설적 해석도 있다. 영국에서도 ‘기업과실치사법’ 제정(2007년)을 전후해 중대산업재해가 크게 감소하진 않았다. 1998~2007년 연평균 2.6% 감소하던 영국 건설산업의 사고사망률(인구 10만 명당 사고사망자 수)이 이후 10년간 연평균 3.3%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그렇더라도 중대재해법이 ‘철퇴’를 쓸 수 있다고 잔뜩 겁주는 법령에 머물러선 안 된다. 매도 알고 맞아야 효과가 있는 법이다. 까다로운 범죄성립 조건, 구체적 인과관계를 명확히 담은 영국, 호주(형법·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법제를 참고해 보완 작업을 당장 시작해야 한다. 정부 부처들이 ‘장관 방어용’ 성격이 짙어 보이는 안전 전담조직을 꾸리는 데 헛심 쓸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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