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뉴 스페이스' 성공의 조건

입력 2021-12-21 17:21   수정 2021-12-22 00:12

일상 속 기술은 우주 개발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자동차 에어백엔 로켓(발사체)의 점화 기술이 들어가 있다. 우주선 디지털 영상 처리 기술은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로 발전했다. 이런 스핀오프 기술이 차곡차곡 쌓이더니, 어느덧 인류 거주지를 외계로 확장하는 ‘테라포밍’으로까지 우주 기술이 진화하고 있다. 이 중심엔 스페이스X·블루오리진 등 기업 주도 우주 개발, 이른바 ‘뉴 스페이스’가 있다.

한국에도 뉴 스페이스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주 개발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관련 기업 지원에 한창이다. 국방부도 나섰다. 지난달 방위사업청 산하에 우주지휘통신사업부를 신설했다. 이달 말엔 ‘우주방위산업 발전 마스터플랜’을 내놓을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최근 가세했다. 산업부는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민간 주도 우주산업 소재·부품·장비 발전 협의회’ 발대식을 열었다.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이 명분. 협의회는 산업 정책, 발사체, 위성, 에너지, 모빌리티 5개 분과를 구성해 70여 명의 전문가를 위촉했다. 이날 행사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KT샛, AP위성 등 우주 관련 주요 기업 및 기관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 취지는 좋았다. 문제는 콘텐츠의 질이다. 기업 관계자들이 행사 전부터 주목했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군 발사체 민간 이전 전략’ 발표가 갑자기 취소된 게 컸다. ADD는 일반적인 주제로 발표를 대체했다. 토론 자리를 채운 건 아쉬움을 삼킨 기업인들의 걱정이다. 한 대기업 A임원은 “스타트업의 심정으로 우주 사업에 임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누리호 같은 거대 공공 프로젝트 외엔 ‘민간 기업이 활용할 만한 인프라가 전무하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B임원은 “한국이 우주강국 사이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짚어봐야 한다”며 후발주자인 한국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척박한 한국을 떠나 유럽에 둥지를 틀었다는 스타트업 C사 대표는 “우주 특성화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의 퇴직 인력을 교수진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내년엔 한국형발사체(누리호) 2차 발사, 달 탐사선 발사,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6호 발사 등 우주 이벤트가 1년 내내 이어진다. 누리호엔 300여 개 기업의 수십 년에 걸친 땀방울이 녹아 있다. 내년부터 10년간 한국이 발사할 위성이 170여 개다. 기업들도 그만큼 분주해질 것이다. 세 부처가 경쟁하기보다 협업해 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가 아니라 진짜 기업이 주인이 되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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