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종교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

입력 2021-12-22 17:20   수정 2021-12-23 00:16

코로나19 확산과 대선 이슈 등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불교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정부·여당의 종교 편향 내지 불교 폄훼가 도를 넘었다며 연일 규탄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발단은 천주교, 개신교와 함께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개하려던 캐럴 활성화 캠페인이었다. 음악저작권에 구애받지 않고 각 매장에서 캐럴을 틀 수 있도록 해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취지였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는 발끈했다. 특정 종교의 선교음악인 캐럴을 활성화하는 데 정부가 앞장서는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 신자들에게 불편과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들끓는 불교계, 캐럴만 아니다
결국 문체부는 이 캠페인에서 빠졌지만 불교계의 종교 편향 규탄 수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불교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가톨릭 행보, 전국 19개 국공립 합창단의 기독교 편향적 인사와 공연 레퍼토리 등 다양한 편향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핵심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통행세’ ‘봉이 김선달’ 발언이다. 정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사찰들이 받고 있는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 사찰을 ‘봉이 김선달’이라고 표현해 불교계의 극심한 반발을 샀다.

불교계의 사과 요구를 정 의원이 거부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조계종과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가 ‘종교편향 불교왜곡 범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대응에 나섰고, 정 의원의 제명과 출당을 민주당에 요구했다. 정 의원의 뒤늦은 사과도 소용없었다. 정 의원은 지난달 25일에 이어 이달 21일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민주당은 불교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당근’도 내놨다.

조계종은 그러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내년 1월 전국승려대회를 열고, 2월 말까지 사퇴 및 제명 처리가 안 되면 종단협과 함께 범불교도대회를 여는 등 대응 수위를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여당으로선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막다른 골목을 만난 모양새다.
작은 불씨가 큰 갈등 안 되려면
왜 이런 사태가 생겼을까. ‘종교 감수성’ 부족이 문제다.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 간 평화를 유지하려면 젠더, 인권, 성 인지 감수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종교 감수성이다.

인구의 65% 이상이 기독교 신자인 미국에서는 요즘 연말 인사로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보다 ‘해피 할러데이즈(Happy Holidays)!’를 선호한다고 한다. 다른 종교 신자들을 위한 배려다. 크리스마스와 캐럴은 특정 종교를 떠나 문화의 일부로 볼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다른 종교를 가진 누군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정부와 공적 기관의 역할은 매우 절제돼야 마땅하다.

정 의원의 ‘통행세’ ‘봉이 김선달’ 발언은 어느 모로 보나 상식 이탈이다. 사찰들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합법적 행위다. 더구나 전체 국립공원의 상당 부분이 사찰 소유지며 국립공원 내 문화재의 70% 이상이 불교문화재라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사찰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비아냥댈 게 아니라 근본적 보상 대책을 찾는 게 옳지 않을까. 정부의 책임은 쏙 빼고 불교계와 국민을 갈등으로 내모는 건 해법이 아니다.

대선이 가까워올수록 종교 이슈는 민감해지기 마련이다. 종교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다. 작은 불씨가 큰 갈등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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