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쪽으로 잠시 걷다 보면 망치질하는 거인 형상이 눈에 들어온다. 미국 조각가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공공미술 설치 작품 ‘해머링 맨’(사진)이다. 높이 22m, 무게 50t에 달하는 이 작품은 2002년 태광그룹 흥국생명의 신문로 사옥 신축을 계기로 설치됐다. 2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면서 서울 도심을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거대한 미술품의 관리자는 흥국생명 사옥 3층에 있는 세화미술관이다. 태광그룹의 세화예술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 미술관은 빌딩 지하에 있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와 더불어 도심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손꼽힌다. 생소하고 어려운 현대미술보다는 미디어아트와 조각 등 상대적으로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해 대중의 접근성을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태광그룹은 2010년 일주아트하우스를 흥국생명빌딩 3층 ‘일주&선화갤러리’로 확장 이전했다. 운영 주체도 일주학술문화재단에서 세화예술문화재단으로 바꿨다. 그룹 창업주 이임용 선대 회장(1921~1996)의 부인이자 이호진 전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 여사(1927~2015)가 설립한 재단이다. 누구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도심 한가운데 미술관을 여는 게 이 여사의 꿈이었다. 일주&선화갤러리가 2017년 서울시의 ‘제1종 미술관’ 허가를 받고 세화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 그 꿈은 마침내 이뤄졌다.
세화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수준 높은 설치미술 컬렉션이다. 해머링 맨을 제외해도 건물 로비에 있는 강익중의 ‘2010 아름다운 강산’,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작가인 자비에 베이앙의 ‘리처드 로저스’ 등 쟁쟁한 작가들의 대작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 줄리언 오피, 이반 나바로, 짐 다인 등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즐비하다.
이번 전시에는 이 선대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다. 허승조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은 “이 회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이어받아 세화미술관이 도심 속 열린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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