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게임체인저' 알약 나왔지만…'백신 늑장 도입' 전철 우려

입력 2021-12-23 17:23   수정 2022-01-22 00:02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국면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꼽힌다. 링거나 주사를 통한 치료제와 달리 집에서 간편하게 알약을 먹는 방식으로 코로나19를 치료할 수 있어서다. 경증 환자가 위중증으로 악화할 가능성도 대폭 낮춰준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재개 여부가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도입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현재까지 확보한 팍스로비드는 16만 명분. 미국(1000만 명분)은 물론 영국(275만 명분) 일본(200만 명분) 등 주요 국가에 비해 현저히 적다. 추가 구매 계약이 더뎌지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화이자·모더나 백신 늑장 도입으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은 것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화이자 “미국에 즉시 공급”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2일(현지시간) 화이자가 개발한 먹는 코로나19 치료 알약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팍스로비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복제되는 것을 막는 방식이다. 앞서 화이자는 고위험군 환자 2200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서 입원 및 사망 예방 효과가 90%에 달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코로나19 변이인 오미크론에 대해서도 효능을 발휘할 것으로 화이자 측은 전망했다.

화이자는 미 정부에 팍스로비드를 즉시 납품하기로 했다. 화이자가 현재까지 생산한 팍스로비드는 총 18만 명분. 이 중 6만~7만 명분을 미국에 우선 배정했다. 화이자는 내년 한 해 동안 총 1억2000만 명분을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은 이미 팍스로비드 1000만 명분을 선구매한 상태다. 팍스로비드는 한 명분 가격이 530달러(약 63만 원)지만, 미 정부는 팍스로비드가 필요한 가정에 무료로 공급하기로 했다.
각국 치료제 확보 경쟁 치열
해외 각국도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확보 경쟁에 돌입했다. 영국 정부는 이날 “팍스로비드 250만 명분, 라게브리오(성분명 몰누피라비르) 175만 명분 등 총 425만 명분을 추가로 구매해 내년에 받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존에 계약한 물량까지 합하면 영국이 확보한 코로나19 치료제는 약 500만 명분이다. 일본도 팍스로비드 200만 명분, 라게브리오 160만 명분 등 총 360만 명분을 선구매했다. 각국이 추가 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는 라게브리오 5만 명분 구매를 취소하고, 팍스로비드를 더 구매하기로 했다. 라게브리오의 입원 및 사망 예방 효과(약 30%)가 팍스로비드(약 90%)보다 현저히 낮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비해 우리 방역당국이 확보한 팍스로비드는 16만2000명분에 그친다. 라게브리오(24만 명분)까지 더해도 40만 명분에 불과하다. 화이자 등과 추가 구매를 논의 중이지만 이를 더해도 확보 물량이 두 자릿수에 그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한국이 미국 인구의 6분의 1 정도라는 점을 감안해도 현재 확보한 물량은 너무 적다”며 “전체 확진자의 20%가 입원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루 확진자 1만 명 정도면 1주일에만 1만4000명분 이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행이 악화할 경우 현재 확보한 팍스로비드 물량으론 약 두 달밖에 버틸 수 없다는 의미다.

팍스로비드의 제조 공정이 복잡해 생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국 역시 내년 늦여름에나 1000만 회분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빠른 구매 계약을 통한 물량 선점이 필요한 배경이다.
의료계 “백신 늑장 도입과 판박이”
의료계에서는 백신 늑장 도입과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말 “화이자·모더나 등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매를 미루다가 12월에야 선구매 계약을 맺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6월부터 구매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5~6개월가량 늦은 것이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위드 코로나가 실패한 건 백신 도입 지연으로 인해 접종 간격이 벌어진 탓이 크다”며 “지금이라도 선제적인 구매가 절실하다”고 했다.

한 당국 관계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사용 승인 일정에 맞춰 도입 물량과 시기를 발표할 것”이라며 “추가 구매 협상이 구체화되면 현재 물량보다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내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사용을 승인하겠다는 목표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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