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그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온 의제는 바로 '젠더 이슈'다. 그러나 이런 이 대표의 셈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의 선거대책위원회 사퇴 시기와 맞물려 젠더 이슈 한복판에 서 있는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영입이 이뤄졌다. 윤석열 대선후보의 셈법은 이 대표와 달랐던 모양이다.
올해 31살인 신 대표는 2004년 한국청소년모임 대표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녹색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선거, 2018년에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지난해에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특히 이 대표와 젠더 이슈를 놓고 벌였던 토론을 통해 얼굴을 많이 알렸다.
신 대표는 지난 20일 윤 후보 측 직속 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에 수석부위원장으로 전격 합류했다. 이날 윤 후보는 '젠더 갈등의 도화선이 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듯 "후보 직속 선대위에 기존 국민의힘과 생각 다른 분이 와서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생각 다른 사람들이 같은 정당 안에 있으면서 그 안에서 토론하고 결론 도출돼야 민주주의 실현 정당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지예 씨도 대화해보면 국민의힘 분들과 큰 차이가 없다"며 "그런 선입견 거둬내고 국민들의 요구를 저희가 다 들여다봐야 하고, 다양한 활동하는 분들이 오셔야 실제로 (국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기 때문에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우려에도 이수정 경기대 교수 영입을 강행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이다.
신 대표 영입이 이뤄진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1일, 제1야당 당대표가 대선 70여 일을 앞두고 당 선대위에서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신 대표가 합류한 새시대준비위의 김한길 위원장은 "'이대남'이라 불리는 젊은 남성의 경우 이 대표가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제 이대남들에겐 더 이상 이 대표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이 대표는 사퇴 선언 이후 "복어를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고 누누이 이야기해도 그냥 복어를 믹서기에 갈아 버린 상황이 됐다"고 했다. 그간 이 대표는 젠더 갈등 등 접근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슈를 종종 복어에 빗대곤 했다.
이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예를 들어 20대 남성들이 이준석을 좋아한다 그러면 '우리는 20대 여성만 잡아 오면 되니까 신지예 씨 데려와 볼까' 이러는 것"이라며 "선거에는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지예 씨 영입 자체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게 프랑켄슈타인 선대위"라며 "각자의 다른 사람의 예쁜 눈, 코, 입을 합쳐 놓으면 프랑켄슈타인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홈페이지에도 불이 났다. 당원 게시판에는 "신지예 절대 안 된다", "숨만 쉬고 있어도 당선되는 구도인데 신지예 영입해서 이렇게 된 거 알고 있나" 등 신 대표 영입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그간 이 대표는 젊은 세대 남성들의 결집을 유도하는 선거전략을 강조해 왔다. 이 대표를 바라보던 2030 남성 지지자들은 그의 사퇴에 '뼈를 내준 기분'이라 토로하고 있다. 일련의 사태들이 2030 남성들의 지지 이탈로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세대결합론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이 대표의 경고가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태경 의원은 "페미니즘을 추가하면 젠더 갈등은 해소되고 청년 지지층이 더 오를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생각일 텐데 젠더 갈등의 심각성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어른들이 보기엔 아이들의 남녀 갈등이 촛불처럼 바람 한 번 훅 불면 쉽게 꺼지는 줄 알지만, 젠더 갈등은 촛불이 아니라 산불이다. 산불에 바람을 넣었으니 갈등은 꺼지지 않고 더 활활 타오를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반면 신 대표의 합류가 중도층에 대한 소구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오히려 이 대표의 선대위 사퇴가 윤 후보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경닷컴과 통화에서 "신 대표의 영입 문제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사실은 진보의 문제라고 보인다"며 "진보 인사가 합류함으로써 중도층 흡수력이 강해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지율 하락에 더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건 이 대표의 선대위 사퇴지, 신 대표의 합류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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