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할당업체에 배정하는 탄소배출 허용치를 줄이기로 하면서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감축키로 하면서, 할당량 조정에 나서면서다. 상향된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각 기업에 할당하는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기업들은 탄소배출권을 비축할 수 있도록 허용해 충격을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탄소 감축 노력을 게을리할 수 있다”며 허용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대안은 막아 놓고 급격한 비용부담을 안기면 살아남을 기업이 없을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계획기관 별로 배출대상 업체와 할당량을 새롭게 정하고 있다. 현재 1차 계획기간(2015~2017년)과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을 거쳐서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이 시행 중이다. 1차 계획기간에서는 배출 전망치의 77% 수준인 16억9100만t을, 2차 계획기간에선 배출 전망치의 76% 수준인 17억7700만t을 할당했다. 제3차 계획기간 중엔 684개 대상업체에 5년간 배출권 26억800만t을 할당했다. 하지만 NDC가 대폭 상향되면서 탄소배출 할당량 조정도 불가피해졌다. 탄소배출 목표치가 줄어드는 만큼 기업에 할당하는 배출권도 줄여야해서다. 기업들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해서 할당량을 메꿀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한국의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은 형성 단계다. 충분한 물량이 확보되지 않아서 가격 급등락도 심하다. 2015년 이후 장기 추세는 상승하고 있지만, 수급에 따라 가격이 춤을 추는 일이 많다. 올해 약 4400만톤의 탄소배출권의 시장에서 거래됐는데, 이는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서 턱없이 낮은 수치다. 올 상반기엔 정부가 갑자기 물량을 풀면서 가격이 1만원대로 급락하기도 했다.
정부는 증권사의 자유로운 매매를 허용해서 유동량을 증가시켜서 시장 활성화와 가격 안정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서 증권사들에겐 그해 보유한 탄소배출권을 다음해나 다음계획기간으로 이월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탄소배출권은 연간 단위로 거래되는데, 그해 탄소배출권을 쓰지 않고 다음해로 보유물량을 옮기는 것을 이월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할당업체들에게는 이월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점이다. 3차 계획기간의 경우 첫 두해는 연간 매도량의 2배까지 이월할 수 있고, 2024년과 2025년에는 연간 매도량만큼만 이월할 수 있다. 탄소배출권을 보유한 기업이 시장에 2023년 10만t을 매도했을 경우, 2024년 10만t만큼 이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기업들에겐 탄소배출권 장기보유를 통한 경영계획을 수립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 셈이다. 이는 기업들이 탄소배출권 쥐고 물량을 시장에 풀지 않을 경우 배출권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환경부는 무엇보다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무기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한다.
이에 기업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을 허용하고,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의 참여자로써의 기능을 꽁꽁 묶어두고 있는 서이라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탄소배출권 할당량이 줄어들었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배출권을 확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에 참여하는 한 관계자는 “기업까지 포함한 다양한 참여자가 거래에 나서야 시장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선물 시장과 위탁매매까지 시장을 더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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