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0만원 비트코인, 장부엔 2500만원…"회계 불확실성 너무 크다"

입력 2021-12-27 17:17   수정 2021-12-28 02:31

회계법인들이 NFT(대체불가능토큰)와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 감사를 기피하는 것은 회계처리 기준이 불명확한 데다 감사 방법·도구도 미흡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커지자 대형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해 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회계처리 방법이 정착되지 않아 기업과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사이 국내 기업의 블록체인 사업 진출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SK그룹 투자사인 SK스퀘어가 최근 암호화폐거래소 코빗 지분 35%를 인수하고,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JYP와 하이브는 NFT사업을 위해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제휴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회계기준 미비해 ‘깜깜이’ 감사
가상자산과 관련한 가장 큰 리스크는 회계처리 방법의 불확실성이다. 결제수단으로 인정받는 암호화폐가 아닌 NFT나 유틸리티(플랫폼 내 포인트)·거버넌스(회원권) 코인 등은 회계처리 지침이 사실상 전무하다. NFT는 공정가치평가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누군가 NFT 그림파일을 ‘미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디지털 원본’이라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사들여 탈세·증여 수단으로 사용해도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전했다.

암호화폐의 경우 기업들은 대부분 국제회계기준(IFRS) 지침과 일반회계기준(GAAP) 등에 따라 무형자산으로 처리하지만 시세변동성이 높아 적용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암호화폐를 무형자산으로 간주하면 가치가 장부가격보다 낮아졌을 때만 손실로 처리하고 반대로 가치가 올라가면 처분해야만 영업외이익으로 반영된다. 빗썸코리아의 작년 말 재무제표는 비트코인을 한 개당 2491만원, 이더리움은 81만4000원으로 반영했다. 현재 6000만원대인 비트코인과, 500만원에 육박하는 이더리움 시가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일본은 암호화폐를 금융자산으로 분류한다. 한국회계기준원 관계자는 “현재 회계가 기업 가상자산의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며 “IFRS에 기준 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유럽은 관련 산업이 한국·미국만큼 활발하지 않아 대응이 느리다”고 전했다.
규제 피해 해외로 나가는 ICO
기업이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경우에도 IFRS 지침이 없다. 미국은 코인공개(ICO)를 유가증권 발행에 준하는 것으로 보지만, 한국은 이를 아예 허용하지 않아 해외에서 발행이 이뤄진다. 그러나 사업의 실질이 국내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관련 기업에 대한 회계처리가 문제로 지적된다. 정재원 EY한영회계법인 감사본부 상무는 “지금까지는 코인 가치가 높지 않고 수량도 적어 묵인됐지만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파트너로 참여한 기업들이 코인을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 계약으로 취득하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할 경우 회계처리가 모호하다”고 전했다.
‘해킹당했다’ 하고선 비자금 만들 수도
회계법인들은 가상자산 관련 거래를 검증하거나 기업 내부통제 절차를 점검하는 일도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일단 법인은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에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실명 인증된 개인만 거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업은 차명계좌로 거래하거나 자체 지갑으로 장외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이재혁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블록체인으로 거래를 추적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소유의 익명성이 문제”라며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시험으로 소액 이체를 시켜보거나 지갑에 접근할 수 있는 키 관리 방법을 점검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은 현금과 같이 금고에 보관할 수 없고 대형은행 같은 공신력 있는 제3 기관도 없다. 국민은행이 참여한 한국디지털에셋, 농협은행이 출자한 카르도 등 가상자산 예치·수탁 기업이 있지만 걸음마 단계다.

기업이 가상자산을 활용해 비자금을 조성, 뇌물로 사용하거나 착복하더라도 현재 기준에선 회계 감사를 통해 이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최근 CNBC에 따르면 세계 탈중앙화금융(Defi) 관련 도난과 사기 등의 사고 규모는 올해 들어서만 11조원에 달한다. 라트비아와 몰타 등 일부 해외 국가에서 암호화폐를 현금화할 땐 추적하기도 힘들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자칫 형사 사건으로 비화할 경우 회계법인이 함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며 “회계법인 관점에선 자의적 판단으로 회계처리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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