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오후 3시30분에 시작될 예정이었던 회의는 오후 4시5분이 돼서야 모두발언이 진행됐다. 이 부위원장은 “1시간30분 안에 회의를 끝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결 안건 2건, 보고 안건 2건 등 총 4건을 논의하기엔 시간이 부족해보였다.
회의가 늦어진 데다 크리스마스이브인 탓이었을까. 오후 5시30분이 넘어가자 참석 위원들이 하나둘씩 회의장을 나갔다. 결국 몇 분 뒤 회의장에는 재적위원 20명 중 9명만 남았다. 기금위 개회 요건은 재적위원 20인 중 과반수의 출석인데, 정족수조차 못 채우게 된 것이다. 그 시간 회의장 밖에서는 복지부 관계자들이 자리를 뜬 위원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다시 와줄 수 없느냐”고 애원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다시 오지 않았다. 918조원의 국민 노후자금을 책임지는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이날 벌인 ‘촌극’이다.
회의의 최대 안건이던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기금위 때 다시 의결하기로 했다. 이 안건은 국민연금의 주주총회 의결권 강화 방안을 담고 있어 재계가 크게 우려하는 대목이었다. 하루 종일 논의가 이뤄져도 부족할 판인데 회의 테이블에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한 것이다.
애초 기금위 구성을 두고 독립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기금위 위원은 전체 20명 중 복지부 장관과 당연직 위원인 관계부처 차관 5명 등 6명이 정부 측 인사다. 이들의 회의 참석률은 매우 저조한 편이다. 올해 10차례 열렸는데 참석률이 10%에도 못 미친다. 이 때문에 기금위는 매번 15명에 미치지 못하는 인원으로 회의가 열렸다. 이날 역시 14명으로 시작해 5명이 빠져나가 회의가 중단됐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당연직 위원은 당연히 불참하는 위원이라는 뜻이냐”고 쓴소리를 했다.
세계 주요 연기금 중 정부 인사가 위원회를 주도하는 경우는 국민연금 기금위가 유일하다. 네덜란드(ABP), 캐나다(CPPIB), 미국(CalPERS) 등 해외 연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는 대부분 민간 출신 투자 전문가가 이끌고 있다. 이참에 국민연금도 정치권의 입김과 비전문가들의 무관심에 더 이상 표류하지 않도록 의사결정 방식 개선을 논의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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