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루 전 대만에선 당장 내년에 1인당 GDP에서 한국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이 대서특필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5년으로 예상한 추월 시점을 확 앞당긴 것이다. 장지엔이 대만경제연구원장의 예상인데, 터무니없지 않다. 지난 10년간 대만 경제가 체질을 개선했고, 반도체 등 수출 호황과 통화가치 강세라는 3박자가 갖춰졌다는 게 근거다. 물론 대만 내에선 “그러면 뭐하냐, 대졸 임금이 한국의 3분의 1인데” 같은 푸념도 쏟아진다.
2003년 1인당 GDP에서 한국에 추월당한 대만은 절치부심 끝에 2010년대 후반 들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 2015~2020년 연평균 성장률이 4.46%로, 한국(1.85%)의 두 배가 넘었다. 1인당 GDP와 비슷한 추세인 1인당 국민소득(GNI)을 보면 대만은 지난해 2만9202달러, 한국은 3만1881달러였다. 한때 1만달러까지 벌어졌던 양국 간 격차가 2019년 5600달러, 지난해 2600달러로 좁혀진 것이다. 올해는 대만이 중국보다도 높은 6% 안팎 성장하고, 대만달러화도 코로나 전인 작년 초 36원대에서 지금은 43원 선으로 강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는 격차가 더 줄었을 듯하다. 내년 성장률도 한국이 3.0%인 데 반해 대만 정부 산하 중앙연구원은 3.85%를 점친다. ‘한국 추월’이 머지않은 셈이다.
동북아에 이웃한 한국 일본 대만은 가까운 듯 멀고, 닮은 듯 다르다. 정치·사회시스템과 제조업 위주 산업 구조도 엇비슷하다. 그래서 각국 국민은 서로를 라이벌로 여기는 심리가 강하다. 누가 뒤처지고, 누가 앞서간다는 전망에 예민하다.
GDP는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가늠하지만, 이를 국민 수로 나눈 1인당 GDP는 삶의 질과 실질적인 경제 실력이란 점에서 주목할 지표다. GDP 기준으로 한국은 대만의 2.5배, 일본은 한국의 3배다. 반면 구매력 평가 기준(PPP) 1인당 GDP는 ‘대만>한국>일본’ 순이다.
건국 이후 70여 년간 일본은 ‘넘사벽’이었다. 그런 일본에 어느새 바짝 따라붙은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심지어 일본에선 주요 7개국(G7)에서 아시아 대표 자리를 한국에 넘길지 모른다는 자조(自嘲)까지 나온다. 디지털 대전환과 팬데믹 속에 여전히 아날로그적 정치·행정의 한계를 절감한 탓이다.
그렇더라도 이젠 일본을 제쳤다고 ‘국뽕 충만’해 한다면 착각이자 오산이다. 저량(stock)과 유량(flow)은 구분해야 한다. 1인당 GDP(流量)에서 일본을 넘더라도, 일본이 100여 년간 축적한 국부(貯量)는 비교 불가다. 국가채무비율 254%(세계 2위)에도 끄떡없는 것은 3조2000억달러의 대외순자산(세계 1위)이 있어서다. 대만의 부상도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과거 하청 중소기업 중심 산업 구조를 반도체 화학 등 대기업 위주로 전환해 위기에 강해졌다.
3국 모두 수출 비중과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높다. 점점 거칠어지는 중국의 압력과 횡포에 동병상련이기도 하다. 중국은 올해 공산당 100주년, 내년 시진핑 3기 출범, ‘제조 2025’ 등 시간표대로 패권국 색깔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대만이 건재한 것은 중국이 안 사고는 못 배길 품목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반도체, 핵심 중간재·부품이 있다.
지난 5년이 그랬듯, 차기 정부가 이끌 앞으로의 5년도 동북아시아는 대변혁기에 있다. 냉혹한 국제질서 재편기에 북한 올인과 외교전략 부재로 5년을 허송한 것이 뼈아프다. 반면 대만은 팬데믹과 미·중 대립 속에 오히려 존재감을 부쩍 키웠고, 미국 일본과의 3각 협력으로 ‘꼭 필요한 나라’로 떠올랐다.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처럼 잠시 졸면 금방 추월당하는 무한경쟁 시대다. 그러나 동북아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3국이 전략적 협력을 이룬다면 누구도 무시 못한다. 서로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뛰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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