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마케팅 없이 온라인몰과 단 하나의 직영 가두 매장으로 올린 깜짝 성적표다. 골프패션업계가 정 회장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관측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한섬을 매각하면서 맺은 ‘의류업 진출 금지’ 조항이 정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사우스케이프의 실력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가량 현대백화점에서 진행된 ‘팝업’ 행사에서도 입증됐다. 압구정본점과 판교점에서 이벤트 성격으로 임시 매장을 열었는데 월매출이 PXG, 타이틀리스트, 지포어 등과 함께 ‘탑5’에 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9개월 동안 기록한 매출 111억원에 대해서도 이례적인 성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사우스케이프의 오프라인 매장은 도산공원에 있는 플래그십스토어 단 하나다. 올초 선보여 단숨에 골프웨어 ‘빅3’에 진입한 미국 수입브랜드 지포어만 해도 주요 백화점에 대부분 입점해 있다.
정 회장이 겸업금지 계약에도 불구하고 골프웨어를 내놓은 것은 토종 고급 골프브랜드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사우스케이프(법인)는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골프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져 골프의류 수요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골프웨어도 브랜드와 디자인이 핵심 경쟁요소”라고 밝혔다. 남해의 최고급 골프 리조트와 정재봉 브랜드까지 더하면 해외 골프웨어와의 경쟁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난다.
관건은 현대백화점그룹이 정 회장의 활동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이냐다. IB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이 한섬 매각 당시 평생 의류업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섬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겸업금지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당사자 간 비밀유지 계약 조건이어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절(絶)패션’ 계약에도 불구하고 현대백화점그룹이 정 회장의 신규 브랜드 출시를 용인한 것은 신세계, 롯데쇼핑 등 경쟁사를 의식해서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한섬으로선 정 회장의 창업 동지이자 아내인 문미숙 디자이너가 경쟁사의 적장으로 가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현대백화점과 사우스케이프의 연합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섬은 현재 정 회장 일가(84.01%)에 이어 사우스케이프(법인) 지분 14.51%를 소유한 2대 주주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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