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 부르며 돌아온 팝페라 테너 임형주

입력 2021-12-30 18:27   수정 2021-12-30 23:32

“‘예술가에겐 국경은 없지만 조국은 있다’는 쇼팽의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았습니다.”

세계적인 팝페라 테너 임형주(35·사진)가 지난달 독특한 음반을 내놨다. 정규 7집 ‘로스트 인 타임: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인데,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군 애국가부터 군가 ‘푸른 소나무’,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등이 담겼다. 수록곡 제목만 보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방부 홍보 음반처럼 보인다. 여리고, 여성스러운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임형주에게 까닭을 물었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활동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늘 컸습니다. 조국인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양껏 담아 음반을 냈습니다.”

그는 군가를 비롯해 시대를 아우르는 노래를 새 음반에 담았다. 한국 최초의 가곡인 홍난파의 ‘봉선화’와 윤심덕의 ‘사의 찬미’ 등 1920년대 노래부터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부른 ‘저 벽을 넘어서’, 코로나19 극복 캠페인에 쓰였던 ‘너에게 주는 노래’ 등 총 14곡을 녹음했다.

옛날 노래만 담으면 심심하게 들릴까 봐 신곡 ‘산정호수의 밤’도 썼다. 그가 직접 작사한 곡이다. “경기 포천 산정호수에 가서 보트를 탔는데 고장이 나 호수 한가운데 멈춰 섰습니다. 그 순간 오리배를 타며 지나가는 노부부를 봤습니다. 사랑이란 저 노부부처럼 깊고 진한 것이란 생각을 가사로 적어냈죠.”

그의 목소리는 1998년 처음 무대에 선 열두 살 소년의 풋풋함이 묻어나왔다. 그는 미성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고, 술과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팬들은 임형주의 한결같은 목소리에 열광했다. 발매 후 14일 동안 인터파크에서 음반 월간 판매량 1위에 올랐다.

그가 맡고 있는 직책은 다섯 가지다. 이탈리아 로마시립예술대 석좌교수, 미국 그래미어워드 심사위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문위원, 국방홍보원 홍보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이다. 이곳저곳 얼굴을 알린 덕에 여당과 야당 모두 대선을 앞두고 그를 청년인재로 영입하려 했다. “명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큽니다. 사회활동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는 거죠. 제 활동이 주는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사회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해외공연이 취소되며 국내에 머물고 있다. 공연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임형주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후배 성악가인 소프라노 조수아의 데뷔음반 프로듀서를 맡은 것이다. 최근에는 가톨릭교로 개종해 가톨릭평화방송에서 라디오 DJ로 활동 중이다. 밀레니얼 세대처럼 여러 가지 ‘부캐(부 캐릭터)’를 지닌 임형주는 버킷리스트에 음악감독을 적었다고 했다.

“겉은 여성스럽게 보이지만, 마음속 열정은 뜨겁습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요. 국제 행사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언젠가 올림픽 음악감독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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