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주식시장의 중심에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있었다. 지난해 코스피 지수는 최고치와 최저치의 격차가 493.36포인트에 이를 정도로 변동성이 컸다. 2020년과는 다르게 종목별 움직임을 쉽사리 예측할 수 없었던데다 금리를 비롯한 외부 요인들도 요동쳤다. 이러한 불확실성 곳에 ETF는 직접투자와 간접투자의 장점을 모두 가진 투자 대안으로 떠올랐다.
ETF 열풍은 세계적인 추세다. 최근 미국 매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모닝스타의 자료를 인용해 작년 1~11월 전 세계 ETF에 유입된 자금 규모가 1조달러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2020년의 총 유입액인 7357억달러를 11개월만에 크게 뛰어넘었다. 글로벌 ETF 자산총액은 9조5000억달러로 2018년 대비 2배로 늘었다. 주식시장의 활황과 고수익 투자처 부재 등이 ETF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고 WSJ는 설명했다.
국내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2021년 마지막 거래일인 지난 30일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 총 18곳이 발행한 ETF 종목은 533개에 달한다. ETF에 투자된 전체 금액을 뜻하는 순자산총액은 약 74조원이다. 2016년 25조원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5년 만에 자산이 3배로 불어난 것이다.
수익률 성과는 어떨까. 전종목 등락률을 보면 국내 상장된 ETF 443개 중 313개가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연초 이후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낸 상품은 한국투자신탁운용의 'KINDEX 블룸버그베트남VN30선물레버리지(H)'다. 수익률이 74.97%로 집계됐다. KB자산운용의 'KBSTAR 미국S&P원유생산기업(합성 H)'이 수익률 74.37%로 1위를 놓쳤다. 게임 관련 ETF인 'KBSTAR 게임테마' 'TIGER K게임'이 각각 68.99%, 67.72%의 수익률로 뒤를 이었다.
증시를 지탱해주는 상품으로 ETF가 주목받기는 했지만, 정작 고수익을 기록한 ETF는 해외 증시나 선물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에서와 마찬가지로 ETF도 게임주를 기초자산으로 한 상품들이 주목받았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액티브 ETF'가 큰 두각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액티브 ETF는 액티브 펀드를 ETF 형태로 주식시장에 상장한 것이다. 기존 ETF의 역할이 특정 지수의 수익률을 그대로 추종하는 것이라면 액티브 ETF는 펀드매니저가 구성종목 일부를 바꿔가면서 초과 수익을 추구해야 한다. 펀드매니저의 운용 역량이 상품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현재 액티브 ETF의 경우 순자산의 70%는 기초지수를 추종하되 남은 30%는 펀드매니저가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돼 있다.
국내 상장된 액티브 ETF는 총 42개(주식형 28개·채권형 14개)다. 이 가운데 올해 새로 상장한 액티브 ETF만 28개다. 작년 7월 한국거래소가 채권형만 허용해온 액티브 ETF 출시 범위를 주식형까지 확대하자 관련 상품 출시의 물꼬가 트인 것이다. 올해만 무려 25개의 주식형 액티브 ETF 상품이 증시에 등장했다.
출시된 액티브 ETF들을 보면 테마가 전기차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반도체, 커머스, 메타버스 등으로 다양하다. 상장 6개월이 지나 성과 비교가 가능한 ETF 26종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높은 상품은 삼성자산운용의 'KODEX K-신재생에너지액티브'(14.69%)다. 다음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퓨처모빌리티액티브'(14.15%), 'TIGER 글로벌BBIG액티브'(12.65%)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올해에는 ETF 상품들의 테마가 더 다양해질 전망이다. 시장 플레이어도 늘어난다. 우리자산운용과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KTB자산운용, 트러스톤자산운용 등이 내년 신규 진출을 앞두고 있다. 기초지수를 복제하는 패시브 ETF와 달리 액티브 ETF는 초과수익을 내는 게 주된 목적이어서 상품간 차별화가 가능하다. 대형, 중형 할 것 없이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액티브 전략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은 "작년에는 코스피지수가 3000선을 처음으로 돌파하는 등 시장이 전반적으로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주도 테마주들도 우상향 흐름을 보일 수 있었다"면서도 "올해에는 유동성 축소가 예고된 만큼 쉽게 돈 벌 수 있는 장이 연출되지는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도 알파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액티브 ETF 상품이 꾸준히 인기를 끌 것으로 봤다.
김진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외 금리 환경 등을 감안할 때 가치주에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인플레이션에 헷지를 할 수 있는 관련 ETF에 관심이 쏠릴 전망"이라고 밝혔다. 다만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이 본격화하면서 인플레이션 고점이 상반기 중에는 확인되지 않을까 한다. 이 경우 다시 성장주로의 자금 이동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테마형 ETF의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이란 전망도 같이 나온다. 방인성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운용방식으로는 액티브 ETF가 집중적으로 출시되고, 섹터별로는 메타버스와 2차전지 등 장기적인 성장성이 확보된 데다 수급이 안정적인 일부 테마형 ETF만 양호한 퍼포먼스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는 이사회 여성 비율이나 인종 비율 등을 따져보는 ETF가 이미 여럿 출시됐다"며 "ESG 테마와 관련해 우리나라 ETF 시장이 올 한 해 기후변화와 탄소배출권 등 환경(E)에 집중했다면 내년에는 사회(S)와 지배구조(G) 문제에 집중한 상품들이 부각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권민경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부터는 증시 상황과 맞물려 이른바 '실패한 테마형 ETF'가 나올 수 있다. 인기 있는 테마라도 위험을 배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며 "증권거래세가 없고 잦은 매매가능하다는 이유로 작년에는 ETF에 개인투자자들이 몰렸지만 올해에는 실패를 학습하고 자신만의 건강한 투자법을 익히는 원년이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끝)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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