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사흘 앞둔 지난달 29일 미국 CNN방송의 이같은 보도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힙니다. 통상 ‘림팩(RIMPAC)’이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환태평양연합군사훈련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 합동훈련입니다. 미국과 정식 수교하지 않은 대만이 이 훈련에 참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아직 림팩 초청국 명단을 정식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 해군 3함대는 내년 여름 이 훈련에 20개국에서 48개 부대, 2만5000여명의 병력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은 1988년 옵서버 자격으로 처음 훈련을 참관한 뒤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번 참가했는데, ‘대만 초청’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군이 대만군과 합동훈련하는 모습까지 연출될 전망입니다. 한·중 관계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한국 정부 입장에선 매우 곤혹스러운 광경이 예상되는 것입니다.
한국은 1992년 한·중 수교와 동시에 대만, 정확히 말하면 중화민국과 단교했습니다. 당시 정부의 단교 통보에 마지막 주한 중화민국대사였던 진수지 전 대사는 “오늘 우리가 대만 국기를 다시 내리지만 이 국기는 우리 마음 속에 건다”고 말하고 떠난 뒤 한국은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최근 대통령 직속 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탕펑 대만 행정원 디지털 담당 정무위원(장관급)을 초청했다가 당일 새벽 일방적으로 취소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 대만 외교부는 “한국 측의 결례와 관련해 주타이베이 한국대표처 대리대표를 불러 강력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힙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우리 외교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한 언론의 관련 문의에 “정확한 결정이고 높이 평가한다”는 입장까지 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년도 여름 한국이 대만과 같은 연합훈련에 참가하는 그림은 중국의 큰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24일 4년 반만에 열린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도 대만해협 관련 문제는 논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사안은 민감하지만 폭발력이 큰 사안인만큼 대선 판에도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이 후보는 “해양세력, 대륙세력에 끼어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어 매우 난처한 입장”이라며 “대만이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하고 기대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고 답합니다.
앞서 일본 방위성 관계자를 인용해 한·미·일 3국이 다음달 미국 하와이에서 국방장관 회담 개최를 협의 중이라는 일본 NHK 방송의 보도를 확인한 것입니다. 다음달 개최가 성사될 경우 3국 국방장관은 2019년 11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확대 국방장관회의를 계기로 만난 이후 2년 2개월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이번 회의에서도 대만해협 문제는 주요 의제가 될 전망입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지난달 23일 “미군과 자위대가 대만 유사시를 상정한 새로운 미·일 공동 작계 초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미·일 작계 초안엔 난세이제도 일대에 주일미군 해병대의 임시 공격 거점을 설치하고 일본 자위대가 물자 수송 등의 후방지원을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까지 담겼습니다. 중국의 대만 침공을 현실로 보고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놓은 셈입니다. 미·일 양국은 당장 오는 7일로 예정된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도 대만 유사시 군사적 공동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만해협 문제가 3국 국방장관회의의 핵심 주제가 될 경우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의 역외 배치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될 전망입니다. 지난달 SCM 공동성명에도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확인했다”는 문구가 포함됐습니다. 한·미 군 당국 간 공동성명에서 ‘대만’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1992년 단교 이후 한국 정부의 ‘금기어’였던 대만은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등장한 이래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점차 한국 외교에서 금기어가 아닌 미국이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확인하려 할 때마다 공동성명 문구에 남기려 하는 ‘필수어’가 되는 양상입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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