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언젠가 사랑에 빠진 사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고 있는 엄마에게 보내주기 위해 늦은 밤 병원 내 공소(公所)에 몰래 들어가 성체를 한 움큼 훔쳤을 때 그 현장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해주었던 수녀를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전해듣는다. 나 같은 슈퍼결핵 환자에게도 듣는 ‘신약’이 나왔고, 여러 사람이 그 약을 먹고 병이 나았다는. 하지만 나는 마냥 반가워할 수가 없다. 그 약은 한 알에 6만원씩이나 하고, 또 2년 동안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등단조차 하지 못한 ‘가난한’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할 수가 없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결국 인정하게 된 엄마가 자살을 시도했으나 밀린 집세를 받으러 온 집주인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는 소식을 듣고서 ‘성체를 훔친 것은 난데 어째서 벌은 엄마에게 주는 거냐’며 예수에게 따지기 위해 늦은 밤 공소를 찾았을 때, 본의 아니게 피아노 뒤에 몸을 숨긴 채로 뒤이어 들어온 강희의 모습을 몰래 훔쳐보게 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마치 십자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폐를 소독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십자가를 향해 맨가슴을 내미는 모습을. 더해서, 마치 신약이라도 먹듯이 그 안에 있는 성체를 꺼내어 먹는 모습을.
내가 이곳에 온 지 1년쯤 되던 날, 그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이 실시된다. 거기에 들면 약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 나는 들고, 강희는 들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혼자만 살고 싶지가 않다. 나는 간호사 몰래 그것을 반으로 쪼갠 다음, 그 반쪽의 알약을 가지고 늦은 밤 공소로 가 성체를 훔쳐 먹고 있는 그녀에게 내민다. 그리고 약속한다. 날마다 날마다 주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로 ‘공범’이 되기를 거부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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