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무 홀가분합니다.”
2022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최설 씨(45)에게 당선작 ‘방학’은 10여 년 묵은 숙제였다. 슈퍼결핵에 걸려 생사의 고비에 놓인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그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스물세 살에 처음 폐결핵에 걸렸어요. 10년 동안 약이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병이 악화해 병원에 입원했고, 정말 죽음을 앞두고 있다가 소설처럼 신약 임상시험을 받으면서 살아나게 됐어요.”
병을 앓기 전만 해도 글 쓰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책이라도 한 권 남겨놓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전까지 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나도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불행이라면 나도 못지않은데’라고 생각했죠. 그 다음부터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방학’은 그의 첫 소설인 셈이다. 물론 10여 년 전 처음 썼을 때와는 제목과 내용이 많이 다르다. 최씨는 “당시 투고를 해봤지만 낙선했다”며 “글이 엉망이기도 했고 폐결핵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뭔가 교훈을 던지려고 했던 거만함도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10여 년 동안 단편만 썼다. 문예지 본심에도 10번 정도 올랐다. 그런 가운데서도 항상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래주머니 같았다.
“올해 한 문예지 본심에서 떨어지고 나서 이 작품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처음엔 300장짜리 중편으로 고쳐 썼어요. 나중에 단편집을 내게 되면 같이 묶어보려 했죠. 하지만 주로 30~40대 찌질한 남성의 일상을 주제로 한 제 단편과는 결이 달랐어요. 이 소설은 따로 한 권의 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장편으로 늘렸어요. 10년 동안 제가 성장한 덕분인지,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어서인지 이번엔 이 이야기를 장악해서 쓸 수 있었죠.”
‘방학’을 쓰면서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최씨는 “소설 속 인물들이 진짜 현실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위해선 최설의 뜻대로만 움직여선 안 된다”며 “등장인물들이 작가인 저조차 납득할 수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뒀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거의 독학으로 글쓰기를 익혔다. “2018년 합평을 하는 아카데미를 1년 정도 다녔어요. 소설 쓰는 친구들을 만나면서 깨달은 건, 소설은 혼자서 쓰는 것이란 것, 그리고 소설은 생겨먹은 대로 쓸 수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제가 천재가 아니니 김훈처럼 쓸 수 없고, 영리하지 않으니 손보미처럼도 쓸 수 없죠. 대신 나처럼 생긴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내 방식대로 쓰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게 자기 합리화일 순 있지만, 그냥 최설처럼 쓰면 되지 않을까 했죠.”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예민함과 디테일이다. 폐결핵으로 오래 아팠던 탓에 남들보다 훨씬 예민한 편이라고 한다. 남들은 굳이 안 보려는 것을 보고, 미세한 일상의 균열을 까발린다. 특히 그의 단편에서 ‘일상을 비틀어 낯설게 보여주기’가 잘 나타난다. “2016년 한 문예지 본심에서 미국의 미니멀리즘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평을 받았어요. 저는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미니멀리즘을 찾아보게 됐고, 레이먼드 카버도 그제야 알게 됐죠.” 사실 그가 영향을 받은 소설가는 다자이 오사무, 알베르트 카뮈 등으로 그중에서도 체호프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최씨는 1년에 360일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가서 글을 쓴다. 그런 생활이 거의 10년째다. 죽다 살아났으니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글만 쓸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형이랑 남동생, 여동생이 다들 결혼해서 살고 있는데, 저를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버지 유산을 제게 다 줬어요. 아버지도 제가 ‘죽기는 아쉽고, 작가가 돼볼게요’ 했을 때 그냥 믿어주셨죠.”
모래주머니를 떼어낸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최설스러운 소설’을 써나가겠다고 했다. “신춘문예 당선돼서 좋은 게 커피값을 벌게 된 것도 있지만, 이제는 독자만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게 된 점이에요. 이제는 뽑히기 위한 글이 아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온전히 독자를 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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