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 과정이 절차적 정당성을 충분히 갖췄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탄소중립위는 지난해 10월 보도자료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역과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산업계·노동계·시민사회·청년·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총 20회가 넘는 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은 단순히 회의를 여러 번 열었다고 보장되지 않는다. 한국경제신문이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을 통해 탄소중립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탄소중립위는 작년 8월부터 10월까지 총 26번의 협의체 회의를 열어놓고 정작 회의록은 단 한 건도 작성하지 않았다. 현장 의견 수렴을 명분으로 회의를 개최하고 참석자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선 전혀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다. 한 정부부처 관료는 “정책 수립을 위해 기업인들을 불러모아놓고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이거나 해당 의견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산업계는 의견을 제시할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협의체 회의 26회 가운데 다섯 번은 NDC 상향안에 대한 회의였는데, 산업계는 관련 회의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NDC 상향안에 대한 협의체 회의 참석 대상은 시민사회, 중소기업, 노동계, 청년단체뿐이었다.
탄소중립위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회의가 워낙 많아 회의록을 작성할 여력이 없었다”는 변명을 대고 있다. 산업계 의견이 배제된 데 대해서도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다만 “회의체별 의견서를 서면으로 제출받았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면 의견서를 통해 전달된 협의체별 요구와 주장은 대부분 반영되지 못한 채 묵살됐다.
어떤 정책이든 정책 효과만큼 절차적 정당성도 중요하다. 특히 탄소중립과 같이 경제와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졸속으로 마련된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면밀한 재검토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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