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내가 본 선수 중 최고의 연습벌레다.” 임성재(24)의 아버지 임지택 씨의 말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게 ‘1만 시간의 법칙’이다. 임성재는 이 법칙을 누구보다 충실히 따랐다.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2년 만에 귀국한 그를 만난 곳도 경기 용인의 한 연습장. 점심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했다. 여섯 살 때부터 골프를 배운 그는 “골프를 시작하고 3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며 “오래 쉬면 몸이 굳고 일관성이 떨어지는데, 그런 느낌이 싫다. 아직은 골프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다.
1998년생 호랑이띠인 임성재는 현재 한국 선수 중 세계랭킹(26위)이 가장 높다. 5년 전만 해도 무명이었으나 2018년 미국프로골프(PGA) 웹닷컴투어(2부·현 콘페리투어)에서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를 거머쥐었다. 이듬해에는 PGA투어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신인왕이 됐고, 2020년 첫 우승과 마스터스 토너먼트 준우승, 지난해엔 통산 2승째를 수확했다. 지난해 11월 말 금의환향한 임성재는 “모든 순간이 잊기 힘들 만큼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마스터스 준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보물 1호는 (우승 트로피가 아니라) 마스터스 준우승 트로피”라고 말했다.
큰 기대를 안고 출전한 지난해 도쿄올림픽은 그가 꼽은 옥의 티였다. 미국으로 가기 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에서 뛴 경험이 있는 데다 경기장인 가스미가세키CC도 자신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 코스였는데 22위에 그쳤다. 그는 “1번 홀 티잉 에어리어에 설 때부터 느낌이 별로 안 좋았다”고 털어놓았다.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이 아니어서 1, 2라운드는 조용히 몸 상태를 관리하면서 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로리 매킬로이(33·북아일랜드)와 콜린 모리카와(25·미국) 등 스타 선수들이 같은 조에 배정돼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더라고요. 그래도 올림픽이 얼마나 큰 무대인지 깨달았으니 다음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죠.”
그는 올림픽의 아쉬움을 씻어내려는 듯 지난해 10월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24언더파를 몰아쳐 우승했다. 6위로 시작한 최종 4라운드에선 버디 9개를 몰아쳐 경기를 뒤집었다. 임성재는 “2라운드까지 선두였는데 3라운드에서 또 주춤했다”며 “지난해에는 유독 사흘 잘 치고 마지막 하루를 망치는 경우가 많아 분한 마음이 있었다. 마지막 날 독한 마음을 먹고 징크스로 남을 뻔한 굴레에서 벗어난 게 큰 수확”이라고 했다.
임성재는 저스틴 토머스, 조던 스피스, 잰더 쇼플리 등의 ‘황금세대’를 이을 ‘차기 황금세대’로 불린다.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PGA투어 5승을 올린 모리카와, 3승의 빅토르 호블란(25·노르웨이), 1승을 거둔 호아킨 니에먼(24·칠레) 등이 임성재의 데뷔 동기이자 황금세대 동료들이다. 특히 모리카와는 신인상을 두고 임성재와 막판까지 경쟁했던 선수. 데뷔 동기 중 가장 먼저 메이저대회 트로피를 수확하는 등 세계랭킹 2위로 앞서가고 있다. 임성재는 “데뷔 동기들과 함께 치면 경쟁심이 불타올라 서로 좋은 자극이 된다”며 “서로를 채찍질하는 것 같아 꼭 필요한 동료들 같다”고 설명했다.
그의 새해 목표는 페덱스 플레이오프 최종 순위에서 10위 안에 드는 것. 올해도 예년처럼 약 30개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세계랭킹 ‘톱10’에 있는 선수 중 같은 스타일의 골프를 구사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어요. 각자의 색깔이 확실하죠. 그들과 톱10 바로 밖에 있는 선수들은 실력이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차이가 엄청납니다. 그 차이를 넘어서기 위해 나만의 색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차이를 극복하겠습니다.”
용인=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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