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항암제라도 암세포 곁에 가서 터져야 제몫을 한다. 엉뚱한 데서 방출되면 오히려 독이 된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들이 신약만큼이나 약물전달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국내 바이오 벤처들도 앞다퉈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차세대 약물전달물질로 각광받고 있는 ‘엑소좀’을 활용한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르면 올 상반기 엑소좀 기반 치료제로 임상계획을 신청하는 국내 1호 기업이 나올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엑소좀은 몸속 모든 세포에서 나오는 지름 50~200nm(나노미터)의 동그란 입자다. 처음에는 세포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알았지만, 이후 세포 속을 드나들며 신호를 전달하는 ‘우체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약물전달기술 개발에 뛰어든 바이오업계가 엑소좀에 열광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아직 개발 초기단계다. 미국 코디악, 영국 에복스 등 글로벌 기업들도 임상 1상 단계다. 국내 기업들과 개발 속도에서 큰 차이가 없다.
엑소좀 분야의 국내 선두업체인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는 동물시험을 통해 엑소좀 치료제의 염증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엑소좀은 몸에서 생성된 물질인 만큼 거부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며 “엑소좀에 태울 약물만 바꾸면 암이나 감염성질환 치료제로 변신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내 업체들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프로스테믹스는 올 상반기 궤양성 대장염을 적응증으로 해외 임상 1상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브렉소젠도 아토피피부염 치료 후보물질로 오는 5, 6월 중 미국에서 임상시험계획을 낼 예정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임상 신청 전 사전 미팅을 앞두고 있다.
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가 상용화되자 관련 CDMO 수요가 폭증한 게 엑소좀에서 재현될 걸로 본 것이다. 현재 국내에 엑소좀에 특화된 GMP 시설은 없다. 해외에선 세계 1위 CDMO 기업인 스위스 론자가 지난해 11월 미국 코디악에서 엑소좀 생산시설을 인수하며 대량생산 채비를 마쳤다.
엑소좀은 차세대 진단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엑소좀은 체내 모든 세포에서 나오는 만큼 검출이 쉬운 편이다. 세포의 종류와 상태에 따라 구성성분이 다르다는 점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 체외진단 기업인 제놀루션은 지난해 8월 소변에서 엑소좀을 분리하는 기술을 KAIST에서 도입했다. 현재 엑소좀을 이용한 암 조기진단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아이큐어는 피부를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로 엑소좀을 투약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카이노스메드는 엠디뮨에서 엑소좀 기술을 도입해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현재 동물을 대상으로 효능을 평가하는 단계다.
■ 엑소좀
세포가 분비하는 지름 50~200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의 물질. 혈액, 소변, 침, 모유, 뇌척수액 등에 있다. 단백질, 지방, 리보핵산(RNA) 등 특정 세포의 정보를 다른 세포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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