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선거대책위원회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 총사퇴 카드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윤석열 대선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가 심각하다고 보고 ‘극약처방’을 한 것이다. 윤 후보와 갈등을 벌여온 이준석 당대표에 대한 당내 사퇴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 선대위 쇄신 방침에도 당분간 내부 알력 다툼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신년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크게 밀리는 결과가 잇따르자 3일 ‘선대위 해체 수준’의 전면 재편과 원내 지도부 총사퇴라는 ‘충격 요법’을 내놨다.
윤 후보도 SNS에서 인사 논란과 2030세대의 이탈과 관련해 “2030의 마음을 세심히 읽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특히 새시대준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했던 ‘페미니스트’ 신지예 씨의 사퇴를 언급하며 “애초에 없어도 될 논란을 만든 제 잘못”이라며 “기성세대에 치우친 판단으로 청년세대에 큰 실망을 준 것을 자인한다”고 밝혔다.
그간 윤 후보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선대위 인적 쇄신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일방적인 선대위직 사퇴 등 당 내홍과 갈등 상황이 윤 후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자 ‘전면적 인적 쇄신’으로 돌아섰다. 신씨 등의 영입으로 ‘이대남(20대 남자)’ 이탈이 속출한 것도 전면 재편의 원인으로 꼽힌다.
윤 후보의 거친 정책 메시지도 김 위원장이 ‘칼’을 뽑은 배경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가 전날 ‘반값 임대료’ 공약을 더듬더듬 읽는 장면이 선대위 텔레그램 방에서 논란이 된 후 격분했다는 얘기도 정치권에서 나온다. 김 위원장이 “선거 때까지 내가 비서실장 노릇을 하겠다”며 “후보도 우리가 하라고 하는 대로 연기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후보는 이날 오전 한국거래소 개장식 중 전해진 선대위 재편 소식에 이후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여의도 당사에 머물며 선대위 쇄신안을 숙고했다. 4일 일정도 후속 대책 논의를 위해 모두 취소했다.
윤 후보는 오후에 당사에서 나오면서 기자들을 만나 “많은 분들이 선거에 대해 걱정하시는데 후보인 제가 부족한 탓”이라며 “선대위를 쇄신하고 심기일전해 선거운동에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선대위 조직은 덩치가 큰 ‘매머드형 선대위’에서 실무자 중심의 ‘초슬림 선대위’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TV조선 인터뷰에서 “총괄본부가 후보의 모든 걸 총괄하는 체제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에 대해서도 “선거총괄본부를 통해 후보에 대한 모든 것을 관장하면 윤핵관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후보와 선대위 재편안에 대해 사전 조율을 하지 않았다고 밝혀 ‘후보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 의원총회 후 기자들을 만나 “(윤 후보와는 선대위 지도부 일괄 사퇴에 대해) 사전에 의논하지 않았다”며 “윤 후보가 특별한 얘기는 없었지만 ‘사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 후보가 갑작스럽게 그 얘기를 들어 조금은 심정적으로 괴로운 것 같지만 오늘이 지나고 나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거래소 개장식 뒤 선대위 쇄신과 관련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에 윤 후보가 후보 패싱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거취를 두고도 한때 혼란이 빚어졌다. 이양수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당초 김 위원장을 포함한 선대위 지도부 전원이 사퇴했다고 밝혔지만, 잠시 후 “의사소통 오류”라며 “김 위원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를 비롯해 의원들도 당직을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저부터 쇄신하겠다”며 “공동선대위원장직과 원내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김도읍 정책위원회 의장과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도 선대위직과 당직에서 일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의원들이 전원 당직을 내려놓은 것에 대해 이 대표에 대한 사퇴 압박 카드로 분석했다.
이 대표는 사퇴론이 불거지자 “제 거취에는 변함이 없다”며 사퇴 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의원들의 당직 사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권성동 사무총장도 (당직에서) 사퇴했냐”고 반문했다. 권 총장은 이날 한 언론에서 사무총장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보도하자, 즉각 오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이 대표의 선대위 복귀설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선대위 재편 구상과 관련해 “이 대표와 일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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