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로봇은 엘리엇 호크스 UC샌타바버라 교수가 이끄는 호크스랩에서 탄생했다. 보잉의 활용 사례를 국내외 언론을 통틀어 처음 공개한다는 그는 4일 “덩굴이 벽을 타고 자라는 모습을 본떴다”며 “틈에 끼거나 장애물을 만나도 끝부분이 스스로 확장해 길이를 넓혀가는 소프트로봇”이라고 설명했다. “로봇 머리에 장착된 카메라가 경로를 인식해 길을 찾아 뻗어가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금속이 아니라 유연한 특수실리콘으로 제작돼 벽이 파손되거나 전선이 끊어질 위험도 없다.
미국의 주요 대학 연구소에선 ‘상상 속의 로봇’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UC버클리 생체모방밀리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로널드 피어링 교수는 다람쥐의 움직임을 모사한 로봇을 개발 중이다. 그는 “다람쥐가 나뭇가지 사이를 뛰어넘을 때 어떤 근육을 사용하는지 연구해 로봇에 적용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피어링 교수 연구진은 스스로 몸을 뒤집는 바퀴벌레의 6족 보행을 적용한 로봇, 여우원숭이가 한 발로 높이 뛰는 메커니즘을 모사한 로봇 등을 이미 개발했다.
UC샌디에이고 생체영감로봇연구소의 마이클 톨리 교수는 복강경 수술에서 의사를 돕는 소프트로봇을 개발해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에선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부(NSF) 주도의 연구과제 지원책인 기업기술혁신(SBIR) 프로그램과 기술이전(STTR)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톨리 교수는 “SBIR을 통해 6개월간 25만달러의 기초 연구비를 지원받았다”며 “상용화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으면 후속 지원책인 STTR을 통해 100만달러 이상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조성한 생태계는 글로벌 기업들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만나 더 넓어진다. 톨리 교수는 “3M, 바스프 등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며 “특정 연구 과제를 먼저 지정하거나 상용화 약속을 요구하는 일이 없다”고 했다.
호크스 교수도 사람이 접근하기에 위험했던 항공기 환기구와 연료구 청소에 소프트로봇을 도입하는 연구를 록히드마틴과 진행 중이다. 그는 “NSF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산호초의 움직임을 본뜨는 연구를 시작했고, 아이디어가 입증되면서 록히드마틴의 투자를 받아 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호크스 교수는 “‘미쳤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crazy idea)를 위해서도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국가의 경쟁력이고, 내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옮겨와 연구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소프트로봇
특수 실리콘, 플라스틱, 고무 등 말랑말랑한 소재로 제작해 유연성과 신축성을 더한 로봇. 사람과 부딪혀도 해를 입히지 않고 바닷속과 거친 지형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 의료, 탐사, 제조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 특별취재팀
이건호 편집국 부국장(취재팀장) 김현석 뉴욕·황정수 실리콘밸리 특파원 박동휘 생활경제부 차장, 강경민 산업부 임현우 금융부, 이지훈 경제부 박재원 증권부, 구민기 IT과학부 김리안 국제부, 차준호 마켓인사이트부 정지은·최한종 지식사회부 기자
화상인터뷰=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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