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했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돈 묶인 개미들 '패닉' [류은혁의 기업분석실]

입력 2022-01-09 07:00   수정 2022-01-09 13:27


주식시장이 연초부터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태로 뒤숭숭하다. 재무팀장이 오스템임플란트 자기자본의 92%에 달하는 회삿돈 1880억원을 횡령하면서다. 오스템임플란트는 현재 한국거래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일개 자금담당 직원이 거액의 회삿돈을 횡령했지만, 회사 측은 빠져나간 자금을 아직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코스닥업계 전반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일각에선 곪을 대로 곪은 코스닥 상장사의 이면이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코스닥시장에서 횡령은 자주 나오는 사건이다. 이번 오스템임플란트 사태처럼 상장사 내부통제 시스템 소홀로 인해서 발생하거나 최대주주나 경영진들이 내부 자금을 빼돌리다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 투자자들은 사내 자체 감시는 물론, 금융감독·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코스닥시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각자 모색해야하는게 아니냐'라는 자조섞인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다양한 횡령·배임 행태…"소액주주들은 웁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84건의 '횡령·배임혐의 발생'(중복 포함) 공시가 나왔다. 특히 코스닥시장에서만 60건에 달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일주일에 한번 이상인 셈이다. 일정 규모의 횡령이 발생하면, 한국거래소는 즉각 거래정지 조치를 취한다. 이후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여부를 판단한다.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는 기준에 미달한다고 여겨지는 회사의 상장 적합성을 따져보는 과정이다.

코스닥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횡령 규모가 일반직원의 경우 자기자본의 5% 이상, 임원인 경우 자기자본의 3% 이상이거나 10억원 이상이면 심사 사유에 해당한다. 통상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15영업일 안에 결정된다. 소액주주들은 거래정지 기간동안 투자한 종목이 혹여나 상장폐지 될까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상장사들의 횡령·배임 행태는 참으로 다양하다. 거래처에 대한 허위계약방식을 통한 선급금 지급,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한 자회사에 대한 거액의 가장 자금대여를 통해 회삿돈을 빼돌린다.

또 과대평가한 비상장주식의 매매대금 지급·환급, 아무런 투자가치가 없는 해외법인 주식의 거액 매입, 회사주식의 시세조종을 통한 부당이득 취득, 유상증자대금의 가장납입, 대주주 개인채무에 대한 회사의 보증채무 부담 등이 횡령이나 배임에 속한다.

일부 잘못된 상장사들은 이 같은 불법행위를 숨기기 위한 허위재무제표 작성·공시, 사업보고서 허위기재, 어음 등의 위·변조, 변호사명의 계약서 위조·행사 행위도 동원하기도 한다.
사고 친 횡령범 또 사고친다?…"바늘도둑, 소도둑으로"
현실적으로 개인투자자들이 횡령, 배임등의 회사 내부 사정을 알기는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횡령 리스크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으론 '이력 조회'가 있다고 말한다.

투자 회사의 대표 등 경영진들이 횡령이나, 배임 등에 관한 이력이 있는지를 공시나 기사를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횡령 이력이 있는 기업이나 경영진들은 언제든지 재발할 우려가 있다.

이번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태를 두고 최대주주이자 창업주인 최규옥 회장의 횡령혐의로 거래중지됐던 사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최 회장은 2014년 치과의사들에게 수십억원대 뒷돈을 제공한 리베이트 혐의와 함께 중고 치과의료기기를 새것처럼 재포장해 판매하면서 취한 이득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당시 횡령액은 9000만원, 배임액은 97억원이었다.


금감원은 무자본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벌이는 위법행위가 당국의 적발 뒤에도 다시 반복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금융감독원의 '연도별 무자본 M&A 적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4년간 금융당국에 적발된 '기업사냥꾼' 180명 중 48.3%(87명)는 과거에 같은 행위로 적발된 전력이 있었다.

무자본 M&A는 자기 자본 없이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그 자체로는 불법이 아니지만 무리한 시세차익 추구로 허위사실 유포, 시세 조종, 횡령 등 자본시장법상 금지 행위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준법감시인 뿐만 아니라 회사 경영진에게 책임물어야"
일부 전문가들은 내부통제 사고 시 준법감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현재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내부통제 사고가 났을 시 최고경영자의 책임여부를 준법감시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봐야한다는 의견이다.

업계에선 이번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지정 감사법인이던 인덕회계법인의 상장 감사인 등록 취소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거래소의 상장폐지 조치는 결국 소액주주들이 더 큰 책임을 짊어지는 꼴이다.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손해배상이 아니더라도, 금융당국에서 문제가 된 상장사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책임을 더욱 강화할 필요있다는 설명이다.

법적인 보완도 주문이 나온다. 대표가 내부통제위원장을 맡는 구조라 책임을 질 수밖에 없으며, 지배구조가 잘되기 위해서라도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제대로된 감시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하더라도 판단의 책임은 투자자들이 짊어진다. 따라서 투자자들이 우선적으로 투자 기업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은 기업에 대한 분석보고서나 공시자료 등 투자정보에 대한 충분한 검토 하에 투자판단을 해야 한다"며 "특히 최대주주의 잦은 변경, 횡령·배임사건 발생, 지속적인 적자시현, 과도한 타법인 출자 등 사건·사고 잦은 기업에서 주로 나타나는 특징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한경닷컴 기자 ehr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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