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조개가 있다. 바닷가 바위에 돌처럼 이끼처럼 붙어 있고 흔히 ‘더러운 곳에서 잘 자란다’고 알려진. 예전엔 포장마차에서 공짜 안주로 많이 내어주던 홍합이다. 홍합이라는 이름은 ‘붉은 살 조개’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고(古)조리서인 규합총서에는 ‘바다에서 나는 것은 다 짜지만 유독 이 붉은 살의 조개는 담백하고 말리면 채소 맛이 난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담채’라 부르기도 한다고. 현재 홍합을 통칭하는 이름 ‘담치’는 여기서 왔다. 우리는 담치라는 이름보다 홍합이 익숙하다. 담치라고 하면 비싼 자연산의 느낌이고, 홍합이라고 하면 왠지 싼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름에 담긴 뜻과 기원을 확인해보면 사실은 정반대다. 겨울 바다를 품은 홍합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지중해 담치 양식이 흥하면서 토종 홍합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값싸고 빨리 먹을 수 있는 식재료였던 지중해 담치가 우리 식탁을 독차지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종 홍합이 다시 등장했다. 울릉도가 큰 역할을 했다. 청정낙원 울릉도의 특산물 홍합밥에 들어가는 홍합은 다르다, 자연산이다, 이름이 ‘섭’이다 등 입소문을 타면서 ‘자연산 홍합’이 화두가 됐다. 전국 해녀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섭’이라 불리는 토종 홍합은 홍합의 대명사가 돼버린 지중해 담치와 구별하기 위해 ‘참담치’라고도 부른다. 섭은 외모부터 남다르다. 다 자란 것은 어른 손바닥만큼 크다. 껍데기는 돌덩이처럼 두껍고 모양은 대체적으로 둥글다. 껍데기엔 따개비가 붙어 있는 것이 많고 살 안쪽까지 파고든 이끼 등 이물질을 제거하기도 만만치 않다. 흔히 홍합은 해감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섭은 찬물에 담갔다가 겉면을 문질러 씻고 안쪽까지 닦아내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손질이 까다롭지만 먹어보면 그 쫄깃함과 단맛은 지중해 담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토종의 맛이다.
토종(섭)이든 외래종(지중해 담치)이든 홍합 요리법은 매한가지다. 제일 좋은 건 탕으로 끓이는 거다. 물에 다시마 한 장 넣고 홍합을 우르르 쓸어넣은 뒤 팔팔 끓이다가 홍합이 입을 벌리면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를 조금씩 넣고 불을 끈다. 마지막에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홍합탕에 칼국수면을 넣고 팔팔 끓여내면 시원한 홍합 칼국수가 간단히 완성된다.
서양식 홍합탕은 여러 종류가 있다. 홍합과 마늘을 함께 볶다가 화이트와인과 생크림을 넣고 끓여낸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식 홍합스튜가 유명하다. 크림과 와인, 홍합이 만들어낸 시원한 국물은 의외의 꿀 조합이다.
손님 접대용으로 좋은 요리는 홍합솥밥이다. 잘 씻은 쌀에 물을 붓고 뚜껑을 연 채로 끓이다가 물이 졸아들기 시작하면 홍합으로 윗부분을 가득 메운 뒤 밥솥 뚜껑을 닫는다. 이후 약불로 서서히 가열하다가 홍합이 전부 입을 벌리면 불을 끄고 5분간 뜸을 들인다. 이렇게 완성된 홍합밥을 손님상에 낼 때는 살만 발라내 밥 위에 얹는다. 달래나 냉이를 다져넣고 만든 양념간장을 곁들인다. 보는 재미에 고소한 냄새, 씹는 맛까지 완벽한 삼위일체를 느낄 수 있는 메뉴다.
홍합으로 간단한 술안주를 마련하고 싶다면 으깬 마늘과 대파와 함께 센 불에 홍합을 볶아 간장, 설탕, 식초로 마무리해보자. 탕수육 같은 맛의 홍합볶음이 순식간에 완성이다.
홍합의 옛 이름 중 하나는 ‘동해부인’이다. 원산지와 외모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다정함이 느껴진다. 동해부인을 가까이 두고 따끈한 요리와 함께 건강하게 겨울을 나시기를!
홍신애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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