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들도 '물적분할' 때리기에 '긴장'

입력 2022-01-11 08:36  

이 기사는 01월 11일 08:3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들이 핵심 사업부를 분할해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수술대에 오르자 사모펀드(PEF)들도 불똥이 튈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PEF들은 기업들의 분할 직후 초기단계에 투자하고, 이후 상장으로 투자금을 회수하는 파트너로 나서왔기 때문이다. 규제방안이 분할 혹은 상장 자체를 금지시키는 데까진 이어지지 않아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투자금 회수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 국내 대형 사모펀드(PEF)운용사는 대형 로펌을 통해 물적분할 및 재상장 등 규정 변화에 따른 대응 방안을 의뢰했다. 해당 운용사 관계자는 “법적으로 중복 상장 자체를 막거나 분할을 제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받아 안도하고 있지만 추후 미칠 영향에 대해 시나리오별 검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PEF들도 본사 차원에서 국내 규제 변화에 촉각을 세우며 한국사무소를 통해 보고를 요청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PEF들이 긴장하기 시작한 건 주식시장 내 개미들의 분노로 불씨가 시작한 쪼개기 상장 문제가 대선을 앞둔 정치권으로까지 빠르게 옮겨붙으면서다. 윤석열 국민의 당 대선 후보는 물적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도록 규정을 정비하겠다 밝혔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도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고, 신설 자회사를 상장할 때 모회사 주주에게 보유지분에 비례해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내용을 언급하는 등 정책 마련에 나섰다. 아직 공약으로 확정되진 않았지만 두 후보 모두 공통적으로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문제를 자본시장 내 불공정 요인으로 가장 먼저 꼽은만큼 업계에선 관련 규정의 개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들의 분할과 투자유치 과정에서 PEF들은 자금줄 역할을 맡아왔다. 지난해에도 현대글로벌서비스, CJ올리브영, 한화솔루션 중국법인, 티맵모빌리티 등 물적분할로 탄생한 기업들이 PEF에서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했다. SK그룹 내 배터리 자회사인 SK온도 물적분할 이후 5조원을 조달하기 위해 PEF들을 초청했다. 11번가, 쓱닷컴 등 e커머스와 티빙, JTBC스튜디오 등 콘텐츠 기업 등 그룹내 신수종사업 계열사들도 물적분할로 설립된 직후 PEF들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아 사세를 키웠다. 회사가 일정궤도에 오르며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에까지 성공한 사례들도 이어졌다. 카카오뱅크, SK아이이티 등이 대표적이다. 각 PEF들도 기업 경영권을 인수해 재매각하는 전통적인 바이아웃 투자에서 이같은 상장전지분투자(프리IPO)에 특화한 별도 펀드를 만들거나 인력을 충원하는 등 시장 확대에 대응해왔다.

이처럼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 상황에서 PEF들은 갑작스런 규정 변화로 IPO 등 투자금 회수과정에 영향을 미칠 지 우려하고 있다. 포스코가 최근 지주사전환 과정에서 정관에 주주동의없이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겠다 못박는 등 여파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쓱닷컴 등 물적분할과 PEF의 투자로 탄생한 기업들이 잇따라 IPO시장을 찾을 예정인만큼 순항 여부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국내 대형 PEF 관계자는 "별도 규제안을 두지 않더라도 여론이 지금처럼 좋지 않으면 거래소가 이런저런 장치를 두며 상장과정에 개입할수 있기 때문에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물적분할을 추진하거나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도 규정 변화가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분할 회사의 투자유치 과정에서 PEF들에 안전장치를 보장해준다. 기업들이 약속한 기한 내 분할회사의 상장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기존 주주가 일정 수익률을 이자로 붙여 투자자 지분을 되사주거나(콜옵션), 이를 거부하면 투자자가 최대주주 지분 까지 매각할 수 있는 조항(드래그얼롱)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투자금에 이자까지 부담해 되사줘야하는 회수 방식보다 회사를 키워 상장하는 방식의 투자 회수를 전제로두고 투자유치를 이어왔다. 상장에 제동이 걸릴 경우 재무전략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셈이다.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교보생명 등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는 사례도 있었다.

시장에서 형성된 거래구조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면서 '풍선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대형 PEF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상 신사업을 위해 초기단계에서 대규모 자금을 모으려면 은행과 금융권에서 담보를 제공하고 차입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라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 시장 참여자들이 때로는 대박을 거두고 때로는 손실을 보며 조정해온 거래구조에 정치논리가 개입하면서 자칫 거래시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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