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민주사회에서 근로관계는 ‘계약’에 의해 성립된다. 고용주와 피고용자 모두 자유의사에 따른 계약이 기본이다. 당사자 간 자유의사가 최대한 보장받고 존중받는 곳이 미국 같은 나라다. 반면 상당수 국가에서는 이 고용관계에 정부가 개입한다. 한국도 국가가 강하게 개입하는 편이다. 사적 자치 영역이든, 정부가 개입하는 공적 영역으로 보든, 통상 서면으로 된 근로계약이 기반이 된다. 이에 따라 고용주(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지시와 관리를 하고, 피고용자는 근로를 제공한다.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학생의 아르바이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근로계약서를 쓰면 원칙적으로 세금을 내야 하고, 알바 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근로장학생 등 학생 알바에도 근로기준법 취지대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게 맞을까.
근로조건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학교에서 근로할 때 정규 교직원이 할 수 있는 사적 업무 지시,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주말 및 야근 등의 추가근무를 정당하게 피할 수 있다. 이런 것 외에도 노동 약자인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부당한 대우는 도처에서 발생할 수 있다. 불합리하지만 일일이 법적 싸움으로 가기 쉽지 않은 일상 근로 중의 부당 행위를 막으려면 처음부터 정당한 형식에 따른 서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둘 필요가 있다. 그런 취지에서 본다면 문자로 된 계약서를 쓰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 법적 다툼이 벌어졌을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러이러한 일을,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한다’는 식의 말로 해둔 계약 조건은 근로자의 피해 구제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기 어렵다. 대학의 근로장학생이든 현장실습 등을 나간 고교 실습생이든 근로를 한다면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출발이 근로계약서인 것이다.
근로계약서라고 해서 대단히 거창하거나 복잡한 것도 아니다. 일간·주간 근로시간의 명기 및 준수 약속, 추가 근무 때는 고용주와의 협의 및 합의, 조건 외 지시 불가 정도만 확실히 해두면 된다.
현대사회의 근로관계는 전근대적인 종속적 노동관계가 아니다.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게 대원칙이다. 그런 계약이어도 국가가 정한 근로기준법에 따르는 것인 만큼 근로자가 해야 할 일, 보수, 근로시간 등 기본 조건을 분명하게 문서화하는 것은 어떤 근로에서든 필요하다.
무엇보다 수입이 줄어들고 업무는 더 딱딱해질 것이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순간 학생이 아니라 근로자가 되기 때문에 세금(소득세) 납부 의무가 생긴다. 대학 등 사용자는 당연히 고용주로서 세무당국에 신고를 하게 되고 세금은 원천징수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면세되는 소득이 신고 대상이 되면서 피고용자는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다. 근로장학생이 저소득층일 개연성이 큰 만큼 실질소득 감소도 무시할 일이 아니다. 또 사용자는 근로시간을 엄격히 관리 감독하게 되면서 학생이 계약된 시간에 자기 책을 읽거나 과제를 할 수 있는 ‘융통성’이 사라질 것이다. 사용자는 학교지만, 중간 관리자로서는 당장 일이 없어도 알바 학생을 놀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계약시간만큼은 만들어서라도 일을 시키는 게 중간 관리자의 관리 업무가 되는 게 현실이다. 학교는 학교대로 관리 책임의 중요성이 커지고 ‘학생 신분’의 이득만 없어지는 셈이다.
대학의 근로장학생은 실질적으로 업무를 시키기 위한 자리라기보다 장학 프로그램의 하나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근로는 명분일 뿐 장학금을 주겠다는 취지인데, 근로계약서까지 쓰고 이 계약서로 인해 이런저런 ‘피곤한 일’이 생긴다면 학교 측은 근로장학생을 대폭 줄이고, 나아가 없애려 들 것이다. 사용자의 심적 부담과 경제적 비용 부담이 모두 늘어나는데 누가 근로장학생 제도를 유지하려 하겠는가.
근로 보호, 노동자 보호가 강조되면서 정작 근로의 기회가 줄어드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허다하게 빚어지는 ‘근로 존중의 역설’ 아닌가. 학생들에게까지 근로계약서 쓰기를 의무화하면 근로 기회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더 어렵게 하는 결과가 될 뿐이다.
고용과 근로 조건 개선은 꼭 필요한 사회적 과제지만, 이로 인해 고용과 근로의 기회가 줄어들고 갈등 비용까지 늘어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학생 알바에게까지 근로기준법을 적용한다면 ‘법 만능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법에 앞서 상식·합리라는 인류 보편의 판단가치도 있는 까닭이다. 좀 더 큰 관점에서 69년 전인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 맞는 옷인지도 지혜롭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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