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에 빠져 잠시 날갯짓을 쉬었던 ‘플라잉 덤보’ 전인지(28)가 돌아왔다. 지난 시즌 우승은 없었지만 톱10에 아홉 번이나 들며 부활을 알렸다. 지난해 초 61위였던 세계랭킹은 39위로 뛰어올랐다. 전인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 샷, 매 홀 신나게 쳐보자던 초심을 되찾았다”며 “골퍼로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기분”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전인지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통산 3승 보유자다. 2012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화려하게 등장해 2016년 LPGA투어 신인왕과 최저타수상을 휩쓸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US여자오픈, 에비앙 챔피언십 등 큰 대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메이저 퀸’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우승 소식이 끊겼다. 깊은 슬럼프가 시작됐다. 그는 “잘하고 싶은 마음과 주변의 기대 때문에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그걸 채우지 못해 자책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골프를 접으려고 했어요. 2020년 초, 평소 관심 있던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겠다고 가족과 회사에 통보했죠. 마흔이 되기 전에 새로운 분야에서 자리 잡으려면 그때가 새로 시작할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회사에서 ‘코로나19로 투어가 중단된 상태이니 새 진로에 100% 확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골프를 아예 놓지는 말고 고민해보자’고 설득했죠.”
매일 두세 시간씩 연습하며 진로를 모색하던 중 LPGA투어가 재개됐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회에 참가했지만 열정도 믿음도 잃어가던 그때, 그를 일깨운 것은 코로나19 상황과 사투 중인 의료진의 모습이었다. “온몸을 던져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일은 직업적 자부심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의료진의 헌신을 보며 ‘내가 투정만 부리고 있다’고 반성하게 됐습니다.” 2020년 8월, 이 같은 생각을 하며 뛴 스코티시 오픈과 AIG 오픈에서 전인지는 잇달아 공동 7위에 올랐다.
마음속 어둠이 걷히자 골프도 화답했다. 2021 시즌 첫 대회였던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4위를 시작으로 예전의 플레이가 돌아왔다. 마이어클래식 3위에 이어 데뷔 후 첫승을 거둔 에비앙챔피언십에서 공동 6위를 하며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다. 그는 “예전에는 한 샷을 놓치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3라운드까지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내일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즐거운 일이 많았던 지난 시즌, 특히 기억에 남는 대회는 9월에 열린 KB금융 스타챔피언십이다.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위축되지 않을까 했는데 도리어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제 한국에서는 제가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잖아요. 곧 ‘노장’이라고 불릴 나이인데 어린 선수들과 경기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 친구들이 배려해준 덕분이겠지만, 제가 몸 관리를 잘하고 열정만 있으면 앞으로 10년은 더 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죠.”
올해로 전인지가 정규투어에 데뷔한 지 만 10년이 된다. 그는 “우승을 향해 가는 과정을 고통스럽지 않게 견뎌내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며 “최대한 빨리, 많이 우승하고 싶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창 힘들 땐 하루가 너무 길고, 필드에서 한 홀 한 홀이 너무 힘들지만 1년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죠. (슬럼프에 빠졌던) 지난 2년이 아깝기도 하지만 다시 달릴 수 있는 발판을 다진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올 시즌은 신나고 즐겁게 보내고 싶어요. 하루하루는 너무 짧지만 시즌이 끝나고 나면 팬들과 함께 이런저런 신나는 일이 많아서 길었던 한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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