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어제 내놓은 이른바 ‘비정규직 공정수당 민간 확대론’도 그런 사례다. 그는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상식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이들에게 ‘공정수당’을 주고 민간으로도 확대하자고 했다.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재정을 동원해서 임금 외 별도의 돈을 주자는 얘기다. 물론 재원 언급은 없다.
반복되는 재정 동원의 퍼주기부터가 놀라운 발상이지만, 고용 관계의 본질에서 엇나갔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은 발상이다. 무엇보다 임금이 무엇이며, 급여가 어떻게 산정되는 것인지, 나아가 일자리가 어떻게 지속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그릇된 고용관(觀)을 가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발언이다. 임금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자율 의지에 따라 서로 이익이 맞을 때 결정되는 것이다. 고용의 안정성이나 업무의 보람·자부심 같은 것도 중요한 요소다.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임금이 낮다면 그 또한 고용시장의 수급 관계, 근로자의 생산성 등이 종합 반영된 결과다. 그래도 비정규직 소득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기에 근로장려세제(EITC)와 강화된 실업급여를 포함한 고용보험제도가 있고, 여타 일반 복지체계가 사회안전망으로 있다. 숱한 논란 속에서도 최저임금제도 또한 그래서 지속된다.
‘비정규직=저임금·고용 불안’이라는 도식적 접근도 낡은 인식 틀이다. 편을 가른다는 측면에서는 다분히 선동적이다. 4차 산업혁명이 심화되는 ‘탈(脫)노동 사회’에서는 자발적 비정규직도 적지 않다. 고소득 비정규직도 얼마든지 있다. 전문직에까지 재정을 동원할 만큼 나라 살림에 여유도 없다. 열악한 중소기업의 정규직은 외면한 채 대기업 비정규직에 재정을 퍼붓는 게 ‘공정수당’이라면, 그 공정은 어떤 공정인가.
더욱 중요한 것은 사적 영역에 대한 거침없는 정부 개입의 위험성이다. 사적 자치, 계약자유 원칙은 헌법의 가치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더욱이 5년 임기 특정 정부라면 그에 맞춰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고용·노동시장에 정부가 개입·간섭하고 편향된 제도를 강요할수록 그에 따른 부작용도 커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 부문 비정규직 없애기를 시도했지만 노노 갈등 등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도로공사 등에서 어떤 혼란이 벌어졌나. 고용시장의 왜곡만 심화시킨 채, 나라 전체로는 비정규직 숫자만 사상 최대로 늘려 버렸다. 그러면서 공정의 가치만 훼손시켰다.
이 후보는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는 말로 고용시장뿐 아니라 경제·산업계를 긴장시킨 바 있다. 탈모 치료까지 건강보험 대상으로 언급하면서 해외 여러 언론으로부터 ‘(북핵보다 탈모가 관심사가 된) 포퓰리즘 논란의 사례’로 소개됐다. 경제 원론과 반대로 가는 공약은 이제 지양하고, 노동 기득권이 된 거대 노조를 변화시킬 방안도 제시해보기 바란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