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동안 노원구에 산 구효서는 “지금 살고 있는 상계동 1355번지 아파트 현관을 열면 창밖이 그대로 수락산”이라고 자랑한다. 글이 막히면 그는 노트북을 덮고 수락산에 오른다. 그러면 온갖 ‘잡생각’이 떠오른다. ‘수락정사’를 짓고 살았던 김시습을 떠올리고, 국궁장 ‘수락정’을 지날 땐 화살이 과녁에 맞는 ‘딱’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김응교 시인은 노원에서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찾는다. 고인이 살았던 상계동 초가집은 ‘경서레디빌 B동’으로 바뀌었지만, 수락산의 ‘천상병 산길’과 ‘천상병 공원’은 그가 이곳 주민이었음을 증언한다.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수락산 아래서 사는데/여름이 되면/새벽 5시에 깨어서/산 계곡으로 올라가/날마다 목욕을 한다./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제법 다정한 이야기들.’(‘계곡흐름’ 중)
문학평론가 하응백은 “1993년 은행사거리에서 불암초등학교 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 그곳에 드디어, 정말 드디어, 내 집이 생겼다”고 기억을 더듬는다. 장은수 평론가는 중랑천을 걸으며 “1990년대 초 노원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중랑천 둔치는 걷고 싶은 곳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물은 자주 말랐고, 검은 물이 흘렀고, 썩는 냄새가 났다. 당시 모습은 이창동의 단편소설 ‘녹천에는 똥이 많다’에도 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결국 소설 속 준식 부부가 원했던 대로 새들이 찾아들고 산책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했다. 장 평론가는 “물려받은 재산 없이 근면하게 작은 보금자리를 일구어온 노원 시민의 원초적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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